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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만의 여행

- 세상 속으로 9 화

 여행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전에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올린 글에 무릎을 치고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의사는 마음의 병으로 정신과를 찾기보다 먼저 여행을 가 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으로요.

정신건강의학과의 약을 처방받아 열심히 먹기보다 먼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치유의 효과가 있는 여행을 하라고 간곡히 권하였습니다.


 아마 저도 어느 정도 정신 건강의 경계선에 이르면 꼭 써봐야겠다고 미루고 있는 처방법입니다.

여행은 분명히 보약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는 항우울제보다 건강하고 만병에 효과가 있는 conservative treatement(보전 요법)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떠났던 가족 여행을 육아 과정에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도구이거나 방법의 하나로 여겨온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같이 가서는 남들이 봐야 한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이 고흐나 미켈란 젤로에 관심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천재 예술가들의 미술관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꼭 보아야 했던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좋아하는 휴양지는 많이 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고흐의 작품을 보아 감개무량했고 암스테르담의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생가의 좁은 다락방을 오르내리며 가슴 아파했지만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툴툴거렸습니다. 너무 어렸던 탓이지요.


 지금쯤 그 계단을 오르내렸더라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가족 여행이란 부모의 스케줄에 맞추어지다 보니 육아에 대해 초급이었던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들의 불평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 눈높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한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하기로 급하게 정하였습니다. 

 순전히 먹고 쉬는 여행으로... 이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흥미 없는 아이들 위주로 단 한 군데의 명소도 둘러보거나 구경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4년 전에 잠깐 속초에 갔었는데 아이들이 속초의 음식을 워낙 좋아하여 이번에 짧게 2박 3일로 다시 그 속초에 가기로 했습니다. 숙박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아파트 한 채를 빌렸는데 일반 펜션이나 호텔보다 저렴했습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 반을 걸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청초호 주변에서 물회와 섭국을 먹었습니다. 서울 식당에서 볼 수 없었던 로봇 서빙 대가 돌아다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전국이 AI 시대에 접어들었구나는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속초 해수욕장 앞에 있는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구경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다시 흩어져 물러나는 파도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념무상이 되는 것 같다가도 마주 앉아 파도 한번 쳐다보지 않고 핸드폰에 몰두해 있는 두 아이의 머리꼭지만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날씨가 봄날 같아 남편과 나는 해변가를 거닐고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햇볕 아래서 졸았습니다. 1 시간 가량 비릿한 바다 내음을 콧속에 저장하고 다시 카페에 왔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카페는 이른 아침이라 텅 비어 있더니 하나, 둘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온 듯한 남녀 커플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꽉 차기 전에 우리 가족은 그 카페를 나왔습니다.


 남자아이들인지라 가끔 친구들과 당구를 치는 것 같아 남자들끼리 당구 쳐보라고 당구장에 갔습니다. 3 구인가를 하더니 포켓볼로 종목을 바꾸어 한동안 치다가 오후 2시 즈음 당구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대포항에 가서 회를 뜨고 해물탕 거리를 얻어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다음 날에는 늦잠을 자고 속초중앙 시장 안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한쪽 테이블에 6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이미 과하게 음주를 하신 상태였는데 다시 소주를 달라고 주인에게 요구를 하고 주인은 술이 이미 과하셔서 드릴 수 없다면서 실랑이가 붙었습니다.


 술이 과한 아저씨는 계속 주변 손님들이나 식당 써빙하시는 아가씨들에게 위협적인 언사를 하셨기에 결국은 주인이 나와 그분이 나가시도록 하였습니다. 소심한 나는 국밥을 먹으면서도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험한 기사와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일까요?

 그 아저씨가 더 과격한 행동을 하실까 봐 너무도 신경이 쓰여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였답니다. 아저씨가 식당을 떠나신 후에야 겨우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중앙시장을 대충 둘러보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남편은 스포츠 방송을 시청하고 나는 미뤄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나름대로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가족 여행이라고는 하나 밥을 먹을 때 빼고는 각자 따로 노는 모습... 우리 집만 그런 걸까요?


 요즘 식당이나 카페, 호프 집에서 조차도 젊은이들이 모인 테이블을 보면 어느 정도 대화를 하다가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꽤 많이 보게 됩니다. 가족들이 식사하는 테이블 조차도 어린 자녀들이 있는 가족이 아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자녀들과 같이 온 테이블은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각자 핸드폰을 쥐고 그 세상을 들여 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아마도 이 모습이 2020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중산층 가족들의 일반적인 모습인 건가 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포노 사피엔스 자녀를 둔 가정이지요.


 저녁에는 동명항에 있는 대게집에 가보았습니다. SNS에 나와 있는 집들을 주로 찾아가다 보니 어디 가나 사람들이 몰려 있더군요. 4년 전보다 물가도 정말로 많이 올라 깜짝 놀랐습니다. 과거 펜션이나 콘도보다 저렴하고 청결한 숙소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았는데 음식값은 정말로 많이 올랐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에 물고기들이 잘 안 잡히는 추세라 그런 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게 집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 테이블에 온 사람들이 식당 홀 전체를 빌린 것처럼 너무도 큰 소리로 대화하고 건배하고 하더군요. 핸드폰에 집중하는 아이들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으니... 그리고 모든 테이블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게가 안주로 좋은 음식이긴 하지만 전 또 슬슬 걱정이 되는 겁니다. 이 분들이 모두 대리운전을 하실 건가? 아님 자녀분이나 아내분들이 운전하실 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외진 해변가인데... 어느덧 제가 음주 운전을 걱정하고 있더군요. 참 못 말리는 줌마지요?


 오랜만에 큰 맘먹고 남편이 비싼 대게를 사주어 맛나게 먹고 숙소로 돌아와 또다시 우리 가족은 각자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갖았습니다. 다른 가족분들은 여행 가면 어떻게 보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같이 모여서 게임하고 이야기하고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 자녀들 초등학교 때만 가능한 것은 우리 집만의 특수 상황인가?  하고요.


 그래도 정말로 오랜만에 서울을 떠나보니 좋더군요. 2박 3일의 마지막 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서울의 빌딩들 사이를 둘러싸고 있는 미세먼지구름들이 보였습니다. 이 미세먼지가 우리 어릴 적 6, 70년와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지금보다 그 과거가 더 심했다고 하던데요.  그 당시에는 서울에 공장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도 제 눈에 서울의 하늘은 유난히 뿌옇고 상태가 나쁜 공기들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조만간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떠나는 여행보다는 친구, 연인과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겠지요? 말로 뭐라고 직접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자신을 감시하는 엄마, 아빠보다야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훨씬 좋겠지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여행을 따라가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해야겠지요. 저도 대학에 입학한 후 부모님과 떠난 여행은 거의 없었으니...


 둥지를 떠나는 아기 새들을 바라보듯 저도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여행을 꿈꾸어야겠습니다. 언젠가 우쿨렐레 한 개와 나만의 짐 하나만 어깨에 메고 나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우리 어릴 때 여행은 항상 기차와 함께였지요. 중, 고등학교 때 여름이면 가끔 가던 대천도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친구들과 여행 시 기차를 타고 춘천에도 가고 더 먼 도시나 섬으로 떠났었습니다. 그래서 기차역을 보면 마음이 설레곤 하지요. 그 기차역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며 클로드 모네의 '생-라자르 역'이란 그림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림 안에 기차는 당시 증기 기관차였기에 수증기와 연기가 가득하여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데요. 실제로 생-라자르 역은 지금도 파리에 남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역인데 파리 고속 철도인 TGV가 지나다니지 않는데도 파리에서 두번째로 파리지엥과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파리에 갈 수 있다면 이 역을 거닐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회상해보고 싶네요. 클로드 모네가 당시 인상파 그림의 안개가 싸여있는 듯한 분위기를 '불쌍한 장님 천치들'이라며 비평가들이 내린 혹평에 대항하고자 정말로 연기와 수증기가 가득 찬 기차역을 연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차는 근대의 산물이었기에 진보에 대한 확신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기차역에 대한 12 연작은 나중에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절대로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화상 뒤랑-루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결국 모네는 비싼 값으로 그림을 팔고 아르장퇴유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기차에서 품어 나오는 수증기가 기차역 천장의 채광창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모네의 회심의 미소가 보이는 듯합니다.

 



제목: La gare Saint-Lazare (생-라자르 역, 클로드 모네, 1877,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인상파 화가들의 첫 전시회가 열리고 혹평이 이어지는 바람에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클로드 모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아르장퇴유를 떠나 파리에 스튜디오를 열고 몇 년 후 인상파 화가에 대한 혹평을 대항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안개가 끼어있는 풍경을 너무 선명하게 그린다는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비난에 보란 듯이 수증기와 안개가 덮인 기차역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 그림을 위해 모네는 역장에게 근처의 노드 역보다 생 라자르 역이 그리기에 훨씬 아름답다고 칭찬하면서 자신이 그림을 그릴 동안 기차가 멈추어 있어 줄 것을 부탁했고 역장이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역 안의 모든 기차가 멈춘 채로 수증기만을 뿜고 승객들도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고 하는데 클로드 모네의 멋진 그림 솜씨뿐만 아니라 그 멋스러운 배포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림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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