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Holiday anxiety

- 세상 속으로 8 화

 5시 알람이 울렸으나 나는 알람을 끄고 계속 누워 있었다. 남편이 주섬주섬 일어나면서

"오늘도 안 나가?"

라고 묻는다.


"응, 오늘도 휴가야."

"좋겠다."

 남편은 일어나기 싫은 듯 머뭇거리다가 샤워를 하러 간다.

 나도 일어나기 싫어 버티다가 남편이 샤워를 끝마칠 즈음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냉장고에서 구운 계란을 챙겨 비닐 팩에 담아 남편의 책상 위에 얹어 놓았다. 남편이 운동 후 먹을 아침 식사로...

그리고 다시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문을 닫고 출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갖게 된 긴 휴가이다.

집 떠나 있는 아이가 돌아오는 겨울에 긴 휴가를 몰아 받아왔다.

순전히 엄마 밥을 그리워하는 아이에게 밥 해주기 위해서 긴 휴가를 받곤 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해주면서 사이사이 집안 정리도 하고 책도 보고 못 본 드라마도 몰아서 보고...

 

 외출을 싫어하는 아이와 나는 그렇게 집안에서 작은 움직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좋기만 하다. 나가서 해야 할 일은 몰아서 하루에 해두고 하루 종일 부엌과 아이방, 내 책상만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놓인 많은 시간 사이사이에 좀 멍하니 있어도 될 텐데...

나는 공연히 불안해진다.


이 오랜만의 귀한 휴가 동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밀어둔 일들, 책 정리, 집안 정리, 옷 정리, 무언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혹시 밀어둔 일이 뭐가 있지?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된다.


 핸드폰에서 가끔 직장에서 보낸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병상 가동률 몇 %, 의무직 회의  몇 일 몇 시, 의사 총회 모임 어쩌고저쩌고....

그 메시지를 볼 때마다 다시 불안해진다.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나는 밥이나 차리고 있네?


 내년부터 영어 공부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얼마 전부터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아이 밥 차리면서 유튜브 들으면 처음에는 집중하다가 곧 소리를 놓치고 딴생각을 하고 있다.

'알다라는 영어를 know만 사용하시면 안 되고요.. 알게 되다는 figure out, 또 find out도 잘 사용하셔야 돼요. 쏼라쏼라....'

한쪽 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뇌를 거치지 않고 반대쪽 귀로 흘러나가 버린다.

갑자기 놀라 다시 집중하다가는 또 놓치고...

이래서 무슨 영어 공부... 한숨 쉬며 불안해진다.


 남은 휴가와 지나버린 휴가를 계산해 본다.

아.. 휴가가 벌써 반이 지나가 버렸네.

그런데 해 놓은 일이 뭐가 있나 곱씹어 생각해 본다.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 귀한 휴가에 한 게 없네...


 휴가가 끝나고 나면 며칠 후 아이가 다시 먼 길을 가게 된다.

아이에게 챙겨주지 못한 건 뭐 없나?

아이가 평소에 먹고 싶어 했던 거 안 해준건 뭐 없나?

아이가 너무 놀기만 하고 가네? 괜찮을까?

뭐 좀 배우고 가면 좋았을 텐데.. 책이라도 좀 읽으라고 잔소리 좀 할걸...

떠날 아이와 아이와 헤어져 있을 시간과 공간에 불안해진다.


 오랜만의 귀한 휴가 동안 나는 불안 속에 떨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 건 무슨 병인가?

Anxiety disorder(불안 증후군)?, depression(우울증), seperation anxiety disorder(분리불안 장애), 등등 중 하나인가?

아님 Holiday anxiety라는 용어도 있었데 이런 증상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나 하고 Holiday anxiety라는 키워드로 구글에서 찾아보니 그런 증상이 있다.

여행을 앞두거나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같은 big holiday를 앞둔 사람들 세 명 중 한 명이 holdiay 첫날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 일 것이며 증상도 약간의 불안증상에서 panic disorder(공황장애)까지 일으키는 경우로 다양하였다. 특이한 점은 늘 같은 holiday에 같은 증상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에서 Christmas와 같이 큰 공휴일에는 가족들을 위한 event를 만들어야 하고 gift를 준비하는 것이 아주 큰 스트레스여서 이런 시즌마다 이런 증상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족에게 주는 선물 마련이 비용면에서나 심적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라고 보너스도 더 주지 않는데 비용은 얼마로 정해야 하나?

맘에 안 들어하면 어쩌나? 가지고 있는 물건이면 어쩌지? 혹시 바꿀 수는 있으려나?

 나 또한 조카 손녀, 손자들 선물을 마련하면서 여러 가지로 늘 고심하게 되는데 사이즈도 잘 몰라 꼭 바꿀 수 있도록 준비한다. 하지만 늘 고르고 나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더 필요한 물건이 없었을까?라고...


 구글에서 내가 찾아본 사이트는 Patient라는 건강 정보 사이트였는데 저자 Lydia Smith라는 분은 Holiday anxiety를 이렇게 관리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첫째, Plan in advance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라. 모든 여행 일정을 잘 짤수록 불안은 감소하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날씨 등은 컨트롤하려 하지 말기)

둘째, Talk to others (다른 사람에게 말하라.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을 것)

셋째, Include normal activity (일상적인 활동을 하라, 평소에 하는 운동이나 활동 등)

넷째, Don't overdo it.(과도한 행동을 삼가라, 즉 평소보다 과한 식사, 음주, 활동을 삼가라.)

다섯째, Try mindfullness (마음 챙김을 해라 라고 해석해야 하나? focus here and now라고 표현하면 될까? 마음 챙김 명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현재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여섯째, Get support. (도움을 청하라. 임상의나 자신의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라는 이야기)

 읽어보니 모두 도움이 될 것 같은 충고들이었다.


 나의 증상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다섯 번째 충고가 해결책인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게 미루어도 되는데...

학생 때는 그렇게 미루기를 좋아하더니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미리 당겨서 하지 않으면 걱정되고

미리 사두지 않으면 불안하고

미리 계획하고 예정해 놓지 않으면 찜찜한 이 증상.


 우리 마음을 덮는 피부는 삶의 나이테만큼 두꺼워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지고 갈라지고 상처를 받은 상흔이 남아 민감한 아토피 피부처럼 바뀌어 가나보다.

 세상 아이들이 빨간 데이인것 만으로도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 같은 holiday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어른들이 가엾고 안타깝다.


 우리 어른들도 이번 크리스마스와 같은 Holiday에 사랑, 기쁨, 행복만 느끼길...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떠오르는 것으로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이란 것을 학교에서 팔았던 기억이 있다. 학급마다 얼마 씩 사야 했는데 나는 그 씰이 우표 대용 역할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카드 우표 자리에 정성스럽게 붙여서 우체통에 넣어 친구들에게 발송했었다.

 그 카드들이 아이들에게 도착했을까? 잘 모르겠다.

 마음씨 좋은 우체부 아저씨들은 그런 카드들이 많아 그냥 발송해 주셨다는데...


 그 크리스마스 씰이 결핵 퇴치에 한몫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이제는 많지 않을 것이며 결핵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많지 않다.  1904년 덴마크의 한 우체국 직원이 결핵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도울 방법으로 고안해 낸 크리스마스 씰.

 그리고 아직도 우체국에서는 발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카카오 이모티콘으로 대치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니 참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 1904. 12.10)


 덴마트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이날 홀벨(Einar Hollbelle)이 우체국의 편지와 소포들을 정리하던 중 이 우편물을 봉하는 동전한잎자리 씰을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그 씰 판매금으로 결핵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도울 기금을 마련하지 않을까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당시 국왕인 크리스찬 9세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만든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다.

 당시에는 우표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나 빨간색 복십자가 붙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1907년에 만들면서 부터였다. 우리나라는 셔우드 홀이란 분이 처음 판매했으며 첫 도안은 숭례문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판매가 중단되었다. 이후 해방을 거쳐 6.25 사변이 종료된 1953년에 대한 결핵 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면서 다시 발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출처: 위키 백과.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기다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