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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다리며

 - 세상 속으로 7 화 

 지난주 목요일에는 먼 곳으로 떠나 혼자 공부하고 있던 큰 아이가 5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인천 공항에 갔다.

 5시 도착이었으나 반차 휴가를 낸 터라 일찍부터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3시 정도.

 그때부터 들고 간 소설책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기 시작했다.


 군고구마 장수가 군고구마 파는 소리가 들려올 때

의사로부터 아내의 암 선고와 가망 없음을 선고받는 이소베.

 그는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당혹감을 비웃듯 군고구마 장수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되살아난다고 고백했다.


 엔도 슈사쿠는 우리나라 고은 시인처럼 몇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가 결국은 상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이다. 그가 삶의 마지막까지 고통을 참아가면서 어렵게 쓴 이 책과 '침묵'이라는 책을 관속에 같이 넣어달라고 유언했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 화장터에 들어가는 관 속에 무엇을 넣고 싶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생각해 두어야 할라나..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인지 아직 나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편이었는데 문득문득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일깨워 주곤 한다.


 얼마 전 외과 과장님께서 연세 드신 환자분들 중에 연세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분은 못 보았다며

선생님도 60이 얼마 안 남았죠? 하며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데 갑자가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나이가 많다고 구박받을 시기가 이제 온 것인가...


 직장에서 특히 여자는 늙어가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직장 다니는 동안은 흰머리 염색도 하고

앉을 때 아구구 소리도 내지 말라는 데...

 이 아구구 소리는 입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늙은 여성을 직장에서 좋은 눈길로 보아주지 않기에 나도 나름 노력은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일까?

 의사라는 직종은 그나마 전문직이라 덜 한 편일 텐데도 왜 그런지 이 조직사회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 눈치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그래서 올해 아이들 입시 때문에 손을 놓아 버렸던 전공의들 논문 점수 만들어 주기 프로젝트도 다시 시작하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한 직장에서 계속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만 비추어지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어느 조직이나 인사 평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나도 한 직장에 오래 있다 보니 보직 직책도 맡아다가 그만두었다가 다시 맡게 되곤 했는데 이 인사 고가 평가 제도라는 게 정확한가 항상 의문이 들곤 했다.

 아무래도 자신과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어떤 수많은 항목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 들 결론은 같지 않을 까? 하는 회의가 들곤 한다.


 연말이 다가왔으니 곧 각 기관이나 기업에서는 이 칼날이 선 인사 고가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랫사람, 위 사람을 평가하는 시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시간.


 인간에 대한 수많은 평가들이 개인적 감정이나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공정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우리 큰 아이는 미국 입시를 올해 치렀다. 결과는 그래도 좋은 편이었다. 본인이 가장 원했던 곳에 가게 되었으니...


 미국 입시 역시 한 학생을 한국의 수시처럼 여러 가지 방향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수시와 마찬가지로 학교 성적인 GPA, 그다음이 수학능력 시험 성적(SAT), 과외 활동, 봉사 활동 등 다양한 것을 검토하고 또한 각 대학에서 요구하는 에세이의 완성도 등을 모두 고려한다.


 우리 아이는 학원 다니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아이였기에 한국 교육 현실이 싫다며 중학교 때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아이도 이 SAT만은 혼자 할 수 없어서 학원을 이번 여름에 한국에 와서 몇 주 다녔다. 족집게로 유명한 근처의 학원이 아닌 조금 저렴한, 조금은 집에서 먼 인지도가 낮은 학원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던 2년 전인 10학년 때와 같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는 한국 학원을 다니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점수로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10, 11월에 지원하는 다른 대학의 에세이는 쓰질 않아 나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자기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에세이에만 심혈을 기울이더니...

 결국은 자기 원하는 대로 한 셈이다.


 아이들의 한국 입시, 미국 입시를 동시에 치르면서 느낀 점은 그래도 미국 입시가 아이들에게 좀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SAT가 낮으면 에세이로 그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기회, 봉사 점수로 만회할 기회, 등.


 물론 우리나라 수시도 여러 방면을 고려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조국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 수시는 아직도 있는 자들,  아는 자들의 리그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둘째 아이 고 1 때  자소서에 들어가는 독서감상문이며 보고서 하나에 몇 백만 원한 다는 한국 입시 컨설팅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말 아이들 가지고 장사하냐는 소리를 내고 싶었다.


 큰 아이의 경우, 엄마가 이래 봬도 이과계열이라며 대학 입학 에세이에 관련하여 인터넷에서 온갖 저널을 찾아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정리해 보내 준 자료 파일을 열 여보 지도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에세이를 써서 보낸 우리 아이의 고집이 그래도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아이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잔소리했던 아이에게 미안하다.


 조선 시대 후기 화가 중에 진경 산수화의 대가였던 호생관 최북 선생은 그림뿐 아니라, 살아간 인생까지 고집으로 가득 찬 분이었던 것 같다. 중국 산수의 행세를 그린 그림만을 숭상하던 당시의 경향을 비난하면서 조선의 산천을 직접 담고자 전국을 돌아다니셨다.  


 '무릇 사람의 풍속도 중국 사람들의 풍속이 다르고 조선 사람들의 풍속이 다른 것처럼, 산수의 형세도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다른데, 사람들은 모두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좋아하고 숭상하면서 조선의 산수를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조선 사람은 마땅히 조선의 산수를 그려야 한다.'라고 그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삶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저항적 기질이 다분했던 선생님은 한 세도가가 그림을 부탁한 것을 자신이 거절하자 세도가라는 위치로 협박하자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면서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기까지 했다고 하여 현대에서는 한국의 고흐로 부르기도 한다.


 최북의 이름은 원래 최식이었는데 최북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고 북(北)의 한자를 쪼개어 자를 칠칠(七七)이라 하고 붓으로 먹고 산다고 호를 호생관이라고 부르는 등 삶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저항적 기질을 기행, 취벽의 일화로 남겼다고 한다.




 

제목: 게와 갈대 (최 북 작품, 1712-1760, 선문대 박물관 소장)


 최북은 숙종, 영조 시대의 화가로 산수, 인물, 영모(翎毛), 화훼(花卉), 괴석(怪石), 고목(枯木)을 두루 잘 그렸는데 특히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 혹은 최순(鶉) 즉, 최 메추라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왼쪽에 쓰인 '지두작'이란 손가락에 먹을 묻혀 그린 그림을 지칭하는 말로 게의 날카로운 발은 손톱으로 집게발은 손톱 밑의 살로 그렸다 한다. 최북은 또한 왕실의 광대(화원) 되기를 거부했다. 자신의 눈까지 찔러가며 신분사회의 장벽을 뛰어넘어 예술을 지키려 항거했음을 그의 초상화는 말한다. 한 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으며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奇行)이 많았고 폭주 가이며 여행을 즐겼다. 그림을 팔아 가며 전국을 주유(周遊),  금강산 구룡연(九龍淵)에서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외치며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일도 있다. 출처: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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