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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Apr 24. 2022

만약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우리 반 부반장 친구가 오늘 결석을 했다. 이유는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결석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연락을 드리는 것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신없으신 와중에 괜히 부담을 더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출석처리를 위해 필요한 서류 안내를 하던 중에 오늘 결석한 학생이 낸 글쓰기 숙제 내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더욱 뻐근하게 만들었다.     

 

우리 반은 매주 주제를 정해서 글을 쓴다. 학기 초에 나눠준 여러 가지 주제 모음집에서 자신의 마음에 내키는 것을 골라서 쓴다. “만약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지난번에 우리 반 부반장이 정한 글쓰기 주제였다.     


같은 주제로 먼저 글을 쓴 학생들도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어딘가로 날아서 여행을 가고 싶다든지, 뉴스에 나와서 유명해질 거라는 등의 날개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썼다.     


우리 반 부반장 친구의 글도 비슷하게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날개를 실제로 가진 것처럼 하고 싶은 일들을 자세히 썼다. ‘다들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이 나왔다. 우리 반 부반장이 날개로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었다.    

  

날개를 증조할머니께 드리고 싶어 했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증조할머니에게 예쁜 하늘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간직하실만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자 했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날개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부반장의 따뜻한 마음은 상상해서만 이루어졌다. 증조할머니께서 날개를 달고 아름다운 풍경은 보실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부반장의 마음은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따뜻함을 가진 친구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어쩌면 내가 가진 직업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순수함을 마주할 때면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 어떤 존재인지, 내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다. 그저 학생들이 따뜻함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매일 내 역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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