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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Mar 09. 2022

가만히 있는 건 도와주는 게 아니야

반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같은 교실에 있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어느 한 학생도 서로 같은 학생이 없다. 그래도 비슷한 느낌의 학생들은 있다. 비슷한 부류끼리 분류하다 보면 서로의 공통점들이 보인다. 매년 반에 꼭 한두 명은 있는 학생들, 오늘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렸을 적에 몸은 다 자라지 않았지만, 마음은 앞서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도움을 드리려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부모님을 방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도와드릴 것 없냐고 여쭤봤을 때 주로 들었던 말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우리 반에는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가만히 있는 친구들이 있다. 문제는 수업시간에 그런 상태라는 점이다.     


당연히 그런 학생들은 수업에 방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참여도 하지 않는다. 따진다면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딴죽을 거는 학생들보다는 도움이 되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그들을 진정시키느라 시간을 쓸 필요도, 그들의 목소리를 이겨내려고 더 큰 소리로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못 본체 한다면 그만인 일이다. 거기서 더 이상 충돌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미래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 수업에서는 둘 다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다. 그가 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신경 쓰인다. 내가 그를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취하는 행동들에 내 힘과 노력이 들어간다 해도, 그 친구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고 싶다.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불편해지고 싶다.     


비밀의 숲 드라마를 봤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이창준이 자신의 시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던, 그냥 넘어갔던 작은 것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큰 차이를 만들었다. 나도 그 시작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딱 감고 넘어간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한 못 본 척이 나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하나씩 불편한 것들을 잃어가 버린다면, 내가 하나씩 놔버린다면 나는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 갈 것이다.    

 

오늘 내가 그냥 못 본 채 넘어가는 선택이, 그런 시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학생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독려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수업에서 편해지고자 그냥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반 학생들에게 예민함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에게 나는 그저 귀찮은 존재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우리 반 친구들을 독려할 것이다. 내 수업 참여 독려를 듣고 대답하는 그들의 말속에 섞여있는 짜증이나 귀찮음은,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들을 수업에 참여시키는 것이, 학생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의 짜증은 내게 응원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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