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요, <다이브>를 읽고
2057년,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서울에서 펼쳐지는 삶과 죽음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
디스토피아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과거를 묻어둔 채로 어떻게 '버텨내는지'를 볼 수 있었다. 아픔을 가진 주인공을 보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여러 주인공들 중 실제로 몸이 아팠던 '수호'에게 눈길이 갔다. 수호는 서울이 물에 잠기기 전에 살았던 아이. 그러나 몸이 아파서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살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애는 모든 기억을 가진 채로 기계로 다시 태어났다.
중심 서사보다도 오래 아팠던 수호에게서 배어 나오는 면면들이 오래 남았다. 작품의 서정적인 문체가 청소년 독자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세심한 묘사들 덕분에 애틋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수호는, 나아지지도 아예 끝나지도 않는 채 열심히 살아 있음을 강요받는 어린아이이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 외에 다른 것을 꿈꾸기 어렵고, 미래를 그리기도 어렵다.
"열두 살부터 병원에서 누워만 지냈어. 방사선 치료니, 척추주사니, 온갖 치료는 다 받으면서. 나아지지도, 아예 끝나지도 않는 상태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
열심히 살 필요.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 선율은 세 음절을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단번에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p40
비슷한 경험 가운데에 있던 때 나는 우선 현실에 부딪히기로 선택했었다. 아픈 몸을 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 건강한 친구들처럼 꿈꾸고 도전하고 열렬히 움직였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가 함께 향했던 목표에 다다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무기력한 감정이 디폴트 값인 것처럼 머무른다.
진짜로 원하는 것은 이제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다음으로 원하는 것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거기에서도 끝끝내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수호는 밝게 웃더니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분위기가 너무 갑자기 바뀐 탓에, 괜찮은 척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 가짜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였다. p47
사람들은 얼마 전, 라디오 스타에 나온 김영철의 이야기에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한없이 밝고 웃기기만 한 김영철에게 아버지라는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는 것. 그를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너무 밝은 사람은 그늘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꼭 내가, 그리고 수호가 그렇듯이. 타인에 비해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하이톤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버릇이니까.
어떤 이는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몸과 마음의 아픔들을 안고 어디로 향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책. 결국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는 큰 아픔 속에서 맺는 관계들에 관한 책이었다.
[문장들]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작을 찾아 헤매곤 한다. 나무의 밑동을 자르면 가지도 말라죽듯이, 그것 하나만 쳐내면 다른 아픔은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니 스물일곱의 경에게 자신은 낙원 한복판에 앉아 투덜거리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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