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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Nov 18. 2023

황금길 끝에 에메랄드 시티가 있어.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황금길을 걸어보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을까? 햇빛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의 길 말이야. 금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보물이야. 귀한 보물이니 보통 사람들은 금색 옷이나 금박으로 장식된 옷을 함부로 입지 못했어. 황제나 왕만이 황금색 옷을 걸칠 수 있었다고 해. 왕이 입는 옷인 곤룡포에도 황금빛 수가 놓여있지. 백성들은 평생 한 번, 결혼식 때에나 왕족의 옷과 비슷한 것을 걸칠 수 있었고 말이야. 금에 대한 욕망은 중세 시대에는 연금로 유행하기도 했지. 이처럼 귀하디 귀한 금으로 마음껏 밟고 디딜 길을 만들었다니!  그런 길이 생긴다면, 그것도 나만을 위한 황금길이라면 얼마나 황홀할까. 


<오즈의 마법사>에도 황금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회오리에 휩쓸려 알 수 없는 나라로 오게 된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묻기 위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 나서지. 가는 길에 만난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도 어느덧 길동무가 돼. 그들이 도달하고 싶었던 에메랄드 시티를 가기 위해 가야 하던 길이 바로 황금길이야. 에메랄드 시티의 위대한 마법사 오즈에게서 양철나무꾼은 따뜻한 심장을, 사자는 용기를, 허수아비는 지혜를 얻고 싶어 했지. 빛나는 황금길 끝에 반짝이는 초록빛 에메랄드 도시가 있고, 그 안에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는 위대한 존재가 있다니. 황금길은 희망과 기대와 부푼 품으로 가득 찬 길이 었겠구나. 금보다 다이아몬드가 더 귀하고 비싸지 않으냐고? 요즘에는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다이아몬드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 하지만 금은 원소이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지. 다이아몬드가 더 비싸고 반짝일지 모르지만 귀한 것으로 따지자면 금이 더 귀하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대체 불가의 원소니까 말이야.


요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진짜 황금은 아니지만 황금길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어. 샛노란 잎이 눈에 띄는 나무를 살펴보니 튤립나무도 있고, 작은 잎을 풍성히 달고 있는 은행나무도 있네. 튤립나무의 단풍은 노랗게 변한 뒤에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해. 그러다가 바스락 거리는 갈색 잎이 바닥에 툭, 떨어지더라. 은행나무는 좀 달랐어. 초록 잎이 노랗게 변하고 노란 잎이 그대로 거리에 떨어지는 거야. 봄이 한창이던 날 벚꽃비가 흩날리던 날이 떠오르지 않니? 봄에 연분홍 벚꽃비가 거리를 수놓아주었다면 가을에는 황금빛 은행잎, 단풍비가 그 자리를 대신하네. 시들어 갈색으로 말라버리기 전에 고운 빛을 띤 채로 온전히 길가에 떨어지는 잎사귀들은 그래서 특히 더 고맙지. 고운 빛깔로 양탄자를 깔아주는 것 같거든. 요즘 한창 은행나무가 노란 황금길을 만드는 중이니 걸으며, 차 타고 지나가며 그 정취를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구나. 은행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가로수라서 네가 사는 마을 어딘가에도 살고 있을 거야.   


은행나무는 오래된 가로수이기도 하지만 지구상에서 아주 오래도록 살아온 나무야. 고생대부터 살았던 이 나무는 공룡이 살았던 시대에 크게 번성했었어. 빙하시대가 오면서 그 시기를 함께 살았던 식물의 대부분이 멸종되었지만 은행나무는 용케 살아남았지. 그리고 그 오랜 세월을 끝끝내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 동네 가로수로, 공원수로 만나게 된 것이지. 중국 일부 지역에서 살아남은 은행나무 씨앗을 사람들이 열심히 옮겨 심은 덕분에 지금은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가 되었고 말이야.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온 것뿐 아니라 수명도 굉장히 길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형하고 오래된 은행나무는 양평의 용문사라는 절에 사는 나무인데 자그마치 1000살도 넘었다고 해. 신라시대 마지막 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전설도 있고,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은행나무로 자라났다는 전설도 있어. 1000년이 넘었으니 긴 세월 동안 얽히고설킨 전설과 이야기도 참 많을 것 같아.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 그래서 암수 그루가 근처에 있어서 서로의 꽃가루를 주고받아야 암나무에서 열매가 열리지. 하지만 은행 열매는 거리를 거니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어(인기가 없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해 큰 미움을 받고 있지). 과육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싫어하거든. 지난번에는 길을 지나다가 굴삭기가 나무를 거세게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어. 다다다다 굉음을 내며 나무를 흔들어 다 익지 않은 은행 열매를 떨어뜨리는 중이었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냄새나는 열매는 밟을까 봐 미리 치워두는 조치였을 거야. 은행나무의 열매는 예로부터 약으로 쓰였고 전통 음식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어 왔어. 어떤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고 시청에 열매를 치우라고 민원 전화를 넣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먹으려고 은행 열매를 주워가기도 하더구나. 은행나무뿐 아니라 잎에도 유용한 성분이 있어서 약으로 많이 쓰여. 징코 빌로바, 깅코 빌로바(Gingko biloba)라는 말을 들어 보았니? 검색해 보면 많은 건강식품이 나올 거야. 깅코 빌로바는 은행나무의 학명이야. 은행 잎에서 유용한 성분을 추출해 건강 기능 식품이나 약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어. 은행잎을 알코올에 담가 우리면 친환경 살충제로도 쓸 수 있대. 은행나무도 다른 나무들처럼 여러 모로 쓸모 있는 귀한 존재인 거지.    


오늘 오후에 갑자기 첫눈이 내리더구나. 이제 가을이 깊어가다 못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할 때가 왔나 봐. 은행나무의 노란 잎도 조만간 다 떨어지고 쓸려가고 말겠지. 날이 충분히 추워지지 않아서 초록색을 거두지 못한 은행나무들도 잎을 우수수 떨구고 있어. 은행나무가 가을이면 늘 내어 주던 노란 길을 즐기기에 우리에게 시간이 또 기회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번 주말에 은행나무 길을 지나게 되거들랑, 운이 좋아서 노란 잎이 잔뜩 떨어진 길을 걷게 되거들랑 에메랄드 시티로 이어지던 황금길을 한 번 떠올려주렴.


에메랄드 시티에서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나중에 가짜 마법사로 밝혀지지만 도로시, 사자, 허수아비, 양철나무꾼은 각자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되잖아. 내가 지금 가는 길 끝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어. 내가 간절히 소망하고 믿어왔던 것들이 거짓으로 판명될지도 몰라.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길 끝이 아니라 길 위에, 걷고 있는 도중에 이미 얻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도로시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노란 은행나무길이 너에게만은 에메랄드 시티로 이어지던 빛나는 황금길이길 바랄게. 그 길을 고이 지르밟고 나아가 너만의 위대한 마법사를 꿈꾸고 만나길 바랄게. 모든 것이 거짓이고 세상이 널 속일지라도 네가 바라 마지않던 것들을 꼭 이루기를 바랄게. 이제 잎새가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은행나무가 우리에게 그 고운 길을 선물해 주네. 


사진출처-경북매일 이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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