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reestory Nov 19. 2023

애증의 감자 서사시

감자 보면 군침 흘리는 영국남자

감자.

감자.


애증의 감자다.



달콤짭자름히 졸여낸 감자조림, 도시락 단골반찬 감자채볶음, 얼큰한 뼈감자탕, 얇고 쫄깃, 기름지게 부쳐낸 감자전, 삼삼히 끓여낸 감잣국, 달큰고소 소스가 배어든 짜장과 카레 안 감자. 담백하고 뽀얀 수제비나 포근한 칼국수 안 감자.소쿠리에 소담히 담겨진 한여름의 삶은 감자들을 그녀는 먹으며 컸다.



편식하지 않는 그녀에게 감자란 기피하거나 찾는 일없어도, 부지런히 상에 올라오는 구황작물이였을 뿐. 주어지는 데로 먹었고, 그 것은 또 기억이 되어 저장되었을 뿐.


특별하지 않았다.


얼핏 떠오르는, 감자요리들을 나열해보니 쉬이 몇줄은 써질지언정. 과연 년단위로 치면 그녀가 섭취했던 감자의 총량은 얼마나 될까.




그는 입이 짧았다. 와중에 먹는 음식은 부실했다. 그 부실한 양의 음식들도 해괴하다- 라고 생각한 그녀는 소매를 걷고, 부엌에 발을 디뎠다.낯선 곳 재료들을 겁없이 부엌에 들여놓고, 기억 속 요리들로 재탄생시켜 남자의 테이블로 올려냈다. 여자의 기억저장공간에는 놀랍게도 많은 데이터가 쌓여있었다. 야속히도, 공들여 차려낸 한 상앞에도, 입짧은 그의 눈동자는 헤맨다. 이질적인 음식 앞에서 겁를 먹은 그는, 심지어 간만 보는 수준으로 식사를 마치는 날도 많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다양한 음식을 먹일까,


어떻게 하면 자신 역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던 그녀는 어느날 깨닫는다.


그 영국남자가 보기만 해도 미소짓는 것, 요리국적 불문하고 꼭 한입이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감자!



데이터를 뒤져 감자요리를 탈탈 방출해보자, 호흥이 예전보다 나아진다. 그래도 여전히 남긴다. ( 한국였음 한소리 가득 들었거나 등짝에 번쩍 번개가 지나갔거나, 다시는 그 음식을 못먹을 거라는 으름장도 왔다갔을 거라고 늘 생각하는 그녀다. )


어느덧 짜증과 용기?가 늘은 그들은 이유를 찾는다.' 서걱거리는 감자는 배를 아프게 할거야, 너의 요릿 속 감자들은 푹 익지 않았어 '


강아지 풀뜯는 소리, 아니 영국남자가 한국 요리 품평하는 소리는 타박소리가 되어 여자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녀의 기준에서는, 간혹 식감이 살아있도록 되려 신경을 더 쓴 음식들이 있을지언정, 하나같이 잘들 익힌 음식들이다. 본인 음식의 자부심을 떼고! 단언코, 집이나 학교급식에서거나 친구네나 식당에서나 통일되어있는! 어릴 적부터의 미각 단련으로 아는 그 익힘이건만!


그렇다고 요릴 멈추자니, 세상 먹는 것이 부실해지고 힘이 안난다. ( 한국인이라면, 한글보다도 먼저 밥심을 배우지 않는가!)



그가 원하는 감자의 식감을 물었다.


'로스트 오븐 포테이토는 속이 포실하고 촉촉해야 맛있어 ' ,


'스튜 안 감자는 푸욱 익어야 해',


' 감자칩은 크리스피 하지만 안은 부드러워야지'


'크리스피한 거랑 설익은 것은 완전 다른 거야'


.


.


.


결론은 - 대부분, 한국의 감자요리들보다 더 푹익히면 된다.


식감을 위해 마무리단계가 살짝 달라질 뿐. 더 익힌다.


방향을 잡고 만들어내자 남자의 호흥은 커진다. 모국의 음식이 먹고 싶겠지- 과한 모성애와 동지애와 이타심으로 그녀의 요리 스킬이 화려해져 간다. 그녀의 감자요리를 바라는 이들이 늘어만 간다.



사설이 길지만, 그럴 만하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단 한페이지로 담아내지만, 무려 10년, 15년 이상 그녀의 삶에 버무려진 주제가 아니던가! 얼마나 많은 실행착오와 수행이 있었던지.



가끔 감자농장에 살고 있는 두더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눈앞에 계속 치이는 감자들.


한국에서 살며 먹었던 모든 감자의 총량도, 이 영국남자와의 일년 아니 반년치 양에 미치지 못할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는 언제나 남자가 달게 식사를 하게 하고, 지인들이 몇이 오든 부담없이 팬트리에서 꺼낼 수 있는 재료다. 유학생시절, 여행자의 시절,  외벌이 가정생활 내 지갑을 위협하지 않았던 착한 재료다.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면서도 부대끼지 않고 곁들임에 따라 변신 또한 무궁무진한 재료다.


하물며 난방시스템은 부실, 야외활동들은 많아 겨울철 기침콧물 달고 사는 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감기를 낫게 해주는 약재같은 재료기도 하다.


이젠 그들의 아이들 조차도 좋아하기에 여자는 오늘도 감자 사러 간다. 크게 좋아하지도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감자였는데. 그녀의 부엌엔 늘  감자가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 Oh, dear dear me, oh dear dear potatoes...)



                  " It's easy to halve the potato


           where there is love"


                                             -     Old Irish Saying






* 그 영국남자와 그 한국여자의 감자채볶음 동상이몽



영국남자: 감자채볶음이 조금이라도 서걱거리는 것을 불안해 한다. 감자채 형태라면 푸욱 삶았거나 튀긴 과정을 각각, 또는 합쳐서 먹어야 찬사가 터진다. 색은 익었음을 보장해주는 그 그을림 톤이 먹음직스럽다 생각.



한국여자: 감자채볶음시 익힘이 과하면 공들여 썰어냈던 감자채 길이가 제각각됨은 물론, 식감은 부침개 안 감자랑 다를바 무언지. 정갈한 채썰림에 볶은 후에도 맑은 톤이여야 모름지기 식당표= 파는 것같은= 고수의  감자채라 생각.

작가의 이전글 영국인 남편을 위한 스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