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12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
몇 번의 이사를 더 하게 될까.
그곳이 어디든 부디 잘 지내기를 바란다.
글을 안 쓴 지 꼭 3개월 째다. 내게 글을 쓰라고 다그치는 이는 브런치 알람이 유일했다. 알람이 왔던 중 몇 번은 글을 쓰기도 했는데 번번이 끝맺지 못하거나 휴지통에 버려졌다. 그러니 못 썼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이야기는 아기의 낮잠처럼 빠르게 찾아왔다가 금세 달아났다. 아기는 무섭게 자랐다. 뒤집기가 조금 늦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잠시, 단숨에 뒤집기와 되집기를 터득하더니 밤벌레 같은 모습을 하고선 하얀 배를 연신 앞으로 밀어댔다. 며칠 뒤에는 팔 힘으로 엉덩이를 뒤로 씰룩씰룩거리며 스스로 앉기까지 이 모든 게 한 달 새 일어났다. 매일이 새로울 아기와 달리 내 안에는 그 어떤 새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육아에 지쳤다는 핑계로 영숙과 광수와 옥순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에 영혼을 팔았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한참을 자고 있던 노트북을 깨웠다. 먼지 낀 화면에는 휴지통 행을 앞둔 문서가 떴다. 작은 집에 사는 용기에 대해 쓰던 중이었다.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조금의 위안이라도 가져다주었는데 이 글은 쓸수록 왜인지 우울했다. 작은 집에 살 용기도 없으면서 애써 포장하고 예쁘게 꾸며 쓰려다 보니 꼬인 것이다. (자신에게 진솔하지 못한 글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
첫 2년 간은 집에 어떤 불만도 없었다. 드디어 집다운 집에 살게 되었다며 주말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집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봉화잉꼬둥지'라는 별칭도 지었다. 그랬던 내게 작은 집에 사는 용기는 겨울에 태어난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온 그날 잃고 말았다. 아파트는 크게 복도식과 계단식 두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때, 그저 통풍이 잘 돼서 좋았던 집이 웃풍이 심한 냉골로 전락했다. 이미 두 번의 겨울을 보냈으면서도 집안의 냉기가 낯설었다.
숲이 내다보여서 좋았던 저층집은 기약 없이 찾아오는 동네의 온갖 냄새와 벌레들로 골치 아팠다. 눈을 흐리게 뜨고 돌아오는 전세 계약 만료까지 살아보려 했지만 추위에 자비 없는 이 집에서 아기와 함께 한번 더 겨울을 보낼 용기가 없었다. 나와 그는 언제부터인가 '봉화잉꼬둥지'라는 애칭을 점점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여름 내내 아기를 등에 업고 서울 경기 동서남북을 다니며 스무 채가 넘는 집을 보았다.
우리는 결국 소위 말하는 내 집을 마련했다. 옹졸하게도 그제야 우리가 사랑했던 집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미뤄왔던 분갈이를 하고, 신혼 가구를 과감하게 처분하고, 처분한 그 자리에 아기 짐을 들여놓으며 처음 이사 왔던 마음으로 쓸고 닦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3개월이다. 어느덧 우리의 작고 낮은 집은 담담하게 늦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집에서의 추억도 한층 짙어질 무렵 홈 스냅 이벤트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름의 햇살만큼 반짝이는 순간을 사진에 담는다'는 작가님의 시선과 작업물이 좋아 난생처음 SNS 댓글 이벤트에 참여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된 것이다. 나는 댓글 말미에 <작은 집에 사는 용기>에 썼다 만 이야기를 예쁜 포장지에 감싸 적었다. 나중에 사진첩을 보여 주면서 아기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작은 집에서도 우리 가족은 이만큼 행복했다고, 언제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선정되고 싶은 마음에 댓글을 쓰면서 뜨끔했지만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둘이 살 때가 훨씬 좋았던 집이긴 했어도 아기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 년 반 동안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이사 결정이 좌절된 순간에는 지금 당장 셋이 살기엔 충분하다며, 우리 어렸을 때는 더 좁은 집에서 잘만 컸다고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다만 진짜 내 속마음은 완성하지 못한 글처럼 단단치 못하고 옹졸하여 부끄러웠을 뿐이다.
그런 내 마음과 별개로 오래도록 우리가 사랑했던 ‘봉화잉꼬둥지’의 기억만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이 가진 고마운 힘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 몇 번의 이사를 더 하게 될까. 그때가 되면 나는 단단해져 있을까.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쩌면 더 약해져 있더라도 봉화잉꼬둥지 속 우리 가족의 모습이 담긴 앨범을 함께 넘겨보면서 웃고 있기를. 그곳이 어디든 부디 잘 지내기를.
ps. 좋은 추억을 담아준 summerofmylife.bydahye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3.09.08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