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 곳의 할머니 신

집筆 라디오 007

by 무해향취

이렇다 할 일도 저렇다 할 일도 없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25년 끝자락에 다다랐다. 이번 25년은 나에게 어떤 해였던가. 치열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최선은 다했지만 이상하게 권태로웠던 모순의 해.


얼마 전 연예인 뉴스가 연달아 터지던 때, 내 알고리즘은 어느 무당의 연예인 사주 풀이 영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신점을 본 적은 없지만, 그 무당만큼은 ‘기회만 된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신도 동자신도 술 취한 조상신도 오가며 점을 치는데, 어느 연예인 방에 놓인 작은 물건 하나, 그것을 반드시 치워야 한다는 조짐, 마당에 무언가를 심으려고 하는 계획 등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의 눈빛은 화면 너머에서도 서슬퍼렇게 느껴져서 나라면 아마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화면으로만 마주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에는 아마 만나지 못하겠지.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그곳에 간다면 할머니 신은 나에게 무엇을 말할까.




진아 뭐 그리 잡생각이 많으냐. 조상들이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데.

너를 위해 켜둔 작은 촛불이 꺼지지 않는데.

이 넘, 호롱불인 녀석이 별이 되고 싶구나.

막 반짝이고 싶은데 반짝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그 걱정에 비해 부단히 뛰지 않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그러다 도와주지 않는 사람까지 원망스럽고. 떽.


그런데 아가야, 너는 이미 충분히 반짝거린단다.

네가 쫓는 빛은 네 빛이 아니란다. 누구보다 네가 잘 알 텐데?

할머니가 너를 더 아껴주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래야 집이 편안하고, 내 마음이 편안하고, 주위 사람이 편안하다.


그리고 부지런하라고 하신다. 발바닥에 땀이 맺히도록 움직여라.

자꾸 눕고 싶다고 늘어지면 몸이 쑤시고 두통이 오고 기운이 쇠해서 될 일도 안된다.

눕는다고 쉬어지는 게 아니다. 명심해라. 응?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천천히 오래 걸어가야 한다.

세상은 원래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

안 되는 일에 머리 싸매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라. 이렇게 저렇게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별일 없다고 여겨지는 네 보통의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얼마나 귀한지 늘 잊지 말고 감사하라. 그걸 아는 것이 너의 빛이다.


어느새 나의 손을 쓸어주던 할머니 신의 서슬퍼렀던 눈빛이, 애잔함으로 스르르 바뀌었다.

그 눈을 마주친 나는 이내 이마를 탁 짚고, 눈물이 핑 돌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나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 할머니 신.

오늘도 할 수 있는 일들 앞에서 마음을 다해 살아보겠습니다.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