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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어제 Nov 10. 2021

아이가 되집기를 했다.

아이는 하루하루 할 줄 아는 것이 늘어간다.

뒤집기 한 판

 "아이고, 귀여워라. 아기 몇 개월이에요?"

 "이제 4개월이에요."

 "뒤집기 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 된 것 하나.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남의 집 아이도 내 아이의 친구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아서 자꾸만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 된 것 둘. 아이는 월령에 맞추어 익히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의무교육 같아서 집집마다 엄마, 아빠가 특별히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어느 날 갑자기 아이 혼자 깨치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허공을 보던 아이가 내 눈을 보고 눈인사할 때, 목도 가누지 못해 안을 때마다 긴장하게 만들었던 아이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주변을 살필 때 부모가 느끼는 경탄이란. 어제와 또 다른 아이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조용히 물었다. "밤새 어디서 배워왔어?"


 그리고 아이는 태어난 지 137일이 되는 날 뒤집기를 터득했다. 며칠 전부터 두 다리를 번쩍번쩍 들었다 떨어뜨리기 여러 차례이기에 이제 곧 뒤집겠구나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이는 다리를 드는 동시에 나름대로 꾀를 내어 오른손을 '휙'하고 왼쪽 어깨 아래의 매트를 쥐고 당겼다. 때론 의도한 대로 손이 닿지 않아 애꿎은 내복 단추만 잡아당기기도 했다. 거실에 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던, 여느 주말과 다를 것 없던 그 시간에 아이는 휙 제 몸을 뒤집었다. 나와 남편은 그 모습을 다시 카메라에 담고 싶어 얼른 아이를 다시 바로 눕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의 몸짓을 기다리던 순간 아이는 마치 어제도, 그제도, 뒤집기는 늘 하던 일이라는 듯 쉽고 빠르게 몸을 뒤집었다. 나와 남편은 그 모습을 찍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송하며 이 기쁜 소식을 알렸고, 엄마와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우리 아기 이제 뒤집는다!"



뒤집기 다음은 되집기

 데구루루. 아이는 이젠 굳이 바닥의 매트를 움켜쥐지 않아도 몸을 동그랗게 말아 옆으로 누웠다가 몸을 쭉 펴며 바닥에 배를 대고 안착하는 우아한 일련의 동작으로 뒤집기를 한다. 아이는 기저귀를 가는 순간에도 제 엄마의 사정은 알 바 없다는 듯이 뒹굴, 뒤집는다. 바지를 입히기 위해 양 발목에 내복 바지를 꿰어놓은 순간에도 뒹굴, 뒤집는다. 목욕 후 로션을 바를 때에도 뒹굴, 자다가도 뒹굴, 저가 언제부터 뒤집기를 시작했다고 마치 뒤집지 않곤 못 배기는 사람처럼 뒤집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제 뒤집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린 자세가 된 아이는 팔꿈치에 기대어 가슴과 목을 번쩍 든다. 앞에 놓인 오뚝이를 보며 놀기도 하고 좋아하는 딸랑이를 앞에 두면 한 손을 뻗어 잡고 놀기도 한다. 그리고 점점 무거워지는지 '낑낑' 금방이라도 바닥에 코를 박을 듯 고개를 숙인다. 아이는 뒤집을 줄만 안다. 낑낑대고 우는 아이를 들어 다시 바닥에 눕힌다. 아이는 몇 초전 낑낑대던 제 모습은 기억도 안 난다는 듯 다시 뒹굴, 다시 한번 뒤집고는 배를 바닥에 깔고 아예 앙앙 울어댄다. 아이는 되집는 방법을 모른다.


 아이의 '되집기'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를 못했다. 뒤집으면 으레 해야 할 일을 다 한 건 줄 알았다. 뒤집기는 할 줄 아는데 되집기는 할 수 없다니, 작은 충격이었다. 침대에 누워 좌로 우로 뒹굴거리는 일이 이리도 힘들게 배우고 익혔던 일이었던가. 아이는 뒤집고 울기를 며칠간 반복했다.


 그리고 아이는 결국 되집는 법을 익혔다. 소리도 나지 않게 부드러운 뒤집기에 비해 아슬아슬하고 둔탁한 동작이지만 아이는 되집는다. 뒤집고 되집기를 두 어번 반복하면 아이는 금세 이불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제는 잘 때도 제멋대로 엎드려 자기도 하고, 데굴데굴 굴러 내 품으로 쏙 들어오기도 한다. 새벽녘에 따뜻한 숨결에 눈을 떠보면 코 앞에 까만 눈동자를 들이대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오늘도 자랐다.



아이는 오늘도 할 줄 아는 것이 늘었다.

 아이를 재우고 옆에 앉아 아이의 성장에 대해 쓰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아이가 자랐다는 기쁨과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 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질문이 있다. '나는?'


 나는 아직 임신 전의 몸매로 회복도 못했고, 머리는 갈수록 숭덩숭덩 빠진다. 맞는 옷도 없고 머리도 지저분해 당장 다음 주 친구의 결혼식에 어떻게 하고 가야 하는지 걱정이다. 자꾸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깜빡해서 내가 지나온 길을 몇 번이고 되돌아 가는 게 일상이다.


 매일매일 자라는 대견한 아이에게 작은 질투와 부러움마저 든다. 나는 아직도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고, 하루하루 아이의 성장을 따라잡기 벅찬데 아이는 쉬지도 않고 자란다. 아이도 잘 키워내고, 복직해서 일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내가 되고 싶다. 현실은 우는 아이를 안고 이유도 모른 채 '미안해'만 되뇌는 엄마, 복직하기 전에 엑셀 함수를 다 까먹어버릴까 겁나는 휴직자, 매일은 커녕 한 달에 글 두 편 쓰기도 벅찬 나.


 나도 어제보다 더 자라고 싶다.

 잘하고 싶다.

 날마다 자라는 너에게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

 "엄마도 많이 자랐지?"


 나는 너와 함께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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