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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Oct 19. 2022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

스스로를 폄하하지 말 것

"이번 주에 회식할 건데, 시간 되세요?"


회식이라니. 일개 계약직 보조교사인 내가 회식을 간다고?

아니, 날 불러준다고? 깜짝 놀랐다. 속으로는 놀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언제 하느냐고 되물었다.

.

.

.

그날 저녁, 어머니랑 김밥을 싸 먹었다. 집에서 부모님하고 저녁을 먹을 때면, 꼭 일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신랄하게 직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듣다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나도 말을 꺼냈다.


"이번 주 목요일에 회식한대요. 근데 날 왜 불렀지?....."

내가 의아해하며 말하니 어머니께선

"너도 선생님이니까 그렇겠지."라고 말씀하셨다.


아..!


그 말을 듣고 나니 원장 선생님이 면접 볼 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실 저는 보조교사란 말도 별로 안 좋아해요. 다 똑같은 선생님이지."

그 말대로 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동등한 선생님으로 대우해주셨다. 호칭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로 대해주셨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계약직 보조교사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터에서 가장 낮은 계급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말단 사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쭈구리 그 자체였다. 내가 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뭘 하든 자세를 낮추고 '네. 네.' 하며 일했다. 신입이기 때문에, 막내이기 때문에 잘 몰라서 눈치 보는 것과는 달랐다.

냉장고에 들어간 커피 중에 하나가 내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학부모들이 선생님 드시라고 돌린 간식을 내가 받았을 때도 모두 놀라며 과하게 기뻐하였다.

또 가끔 책임이 수반된 일은 '이것도 내가 해야 하나?' 하며 선을 그어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나서야 할 순간에 '내가 나서도 되는 건가?' 하며 되려 뒷걸음질 치기도 하였다.


'나는 보조니까.'


그 모든 게 교사로서 당연히 받는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도 나는 스스로를 '일개 계약직 보조'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내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 나는 더 이상 실습생이 아니구나. 나도 같은 선생님이지.'

그제야 그동안의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제삼자의 눈을 통해 본 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본 나의 모습은 등 굽은 새우 같았다. 등은 둥글게 말려서 아래를 쳐다보며 손을 모아 한껏 굽신거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굽신거리는 행색은 아니었지만, 내면의 나는 그렇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조금 당당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비록 짧게 일하지만 나도 같은 선생님이다. '보조'에 초점을 맞춰 생각할 게 아니라 '선생님'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나도 당당하게 내 권리를 주장하고 니 일 내 일 나누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일하든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단기 계약직이든 말단 사원이든 말이다.

앞으로 일터에서의 내 모습이 조금은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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