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
"선생님, 오늘 4,5세 반 견학 가는데 같이 가서 도와주세요~"
"엇 네~"
오늘 견학이었구나. 보조교사긴 해도 전담하는 반이 있다 보니 우리 반이 아니고서야 일정을 모른다.
'또 나가네.'
어제는 우리 반 아이들 바깥놀이를 갔는데, 오늘은 다른 반 아이들과 견학을 간다.
3세 반보다 4,5세가 인원이 더 많다. 그래도 아이들이 말이 통해서 말도 잘 알아듣고 사고도 잘 안친다.
머릿수는 많아도 선생님으로서 몸은 편하다. 내가 가는 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선생님들도 잘하시고 아이들도 말 잘 듣는데 거기서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도움이 되면 몰라도, 내가 도움이 안 된다면 조금 민망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원장 선생님께서 '안 가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끝내 그런 말은 듣지 못했고, 같이 버스를 타고 견학을 갔다. 아이들 안전벨트를 몇 명 매 줬는데 작게나마 내가 도움이 되었단 사실에 기뻤다. 늘 돕는 입장이지만 아직도 어설픈 일처리에 민망한 나인데, 오늘 벨트는 척척 빠르게 매주었다.
버스 안에서 쫑알쫑알 수다 떠는 애기들 목소리가 귀여웠고, 귀여움에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요즘 아침에 커피를 안 마셔서 그런가. 어딘가 피곤해서 창 밖 풍경을 보며 조용히 갔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입을 열었지만 모든 말에 대답해줄 기운은 없었다. 내가 담임이 아니라 그런지 아이들도 내게 말을 잘 걸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런 점이 민망했을 텐데, 오늘은 되려 고마웠다.
가끔 뻘쭘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단체로 앉아서 무언가 시청할 때, 선생님들은 열심히 핸드폰 셔터를 눌러댔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찍어도 놓치는 순간들이 있기에 나도 사진을 찍으려 폰을 들었다.
'어...... 어느 반을 찍어야 하지? 안 찍어도 되나..?'
모두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니다. 두루두루 도와주려고 온 거긴 하지만 우리 반이 아니다 보니 내가 찍어도 되는 지도 의문이었다. 애초에 선생님들이 잘 찍고 있는데 내가 괜히 나서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됐다.
민망함에 핸드폰을 들어 단체 사진 몇 장만 소심하게 찍고 곧장 핸드폰을 내려놨다. 아이들 옆에서 핸드폰을 들이밀며 열정적으로 사진 찍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나는 그 옆에서 어색하게 서있었는데, 그때 조금의 소외감이 느껴졌다. 선생님들 각자 독립적으로 속해있는 반이 있는데 나는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퍼포먼스가 끝나길 기다렸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반 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누굴 따라가야 하지?'
잠시 고민했지만, 내가 평소에 가장 자주 들락거리는 반에 쫓아갔다.
인원수가 많은 반이라 평소에도 자주 도와드린다. 자잘한 일부터 이불 깔기, 양치질, 잔반 처리 등 익숙하게 도와왔던 반이다. 아무래도 선생님 혼자 열댓 명을 살피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뒤늦게 그 반 아이들을 뒤쫓아갔다.
"00아~앞에 보고 걸어야지."
"짝꿍 손 잡아요~"
담임 선생님을 필두로 하여 아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졸졸 따라갔다. 나는 맨 뒤에 서서 이탈하는 아이들이 있는지, 넘어질 것 같은 아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겁이 많은 아이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였다. 또, 자리가 부족하면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였으며 어려운 놀이가 있으면 옆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다소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3세 반을 주로 맡았었기에 4,5세는 내게는 의젓하게 느껴졌다. 3세는 손을 안 잡고 있으면 혼자 자리에서 이탈해 도주해버려서 쫓아다니기 바빴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도 않아서 가끔은 아이를 안고 자리로 다시 데려오기도 하였다. 그런 3세에 비하면 4,5세는 양반이었다. 이렇게 몸이 편할 수가 없었다. 다만, 수다쟁이들 사이에 있으니 데시벨 높은 수다 소리에 귀가 앵앵 울릴 뿐이었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나왔다.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가방에서 꺼내셨다.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서서 '준비, 시작~'을 외치는 선생님. 아이들이 일제히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보기 좋았다. 나는 그 광경을 옆에서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아낀다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선생님 다리와 허리 부근을 감싸 안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외로웠다. 어느 반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로 돌아다니는 내 몸이 뻘쭘해 오그라들었다. 하하호호 같이 웃기도 민망한 순간이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 모두 행복해 보여서 내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 내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건물 앞 커다란 캐릭터 동상과 크리스마스 장식에 아이들을 세워놓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담임 선생님이 말하는 포즈에 맞춰 아이들이 브이를 하기도 하고, 꽃받침을 하기도 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나도 같이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모두가 담임 선생님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저 아이들도 안다. 본인의 담임교사가 누구인지, 본인이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 말이다. 잠시나마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좀 이곳 구성원이 된 것 같았는데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그들과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마치 이방인 같달까. 이방인이자 방랑자. 이곳저곳 떠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마을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을 마주한 거다. 며칠, 몇 달 묵다 보니 나도 이 마을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이런 순간마다 내가 이방인인 걸 깨닫게 되는 그런 스토리. 내 신세를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스토리 한 편이 뚝딱 완성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감정은 뭘까 생각했다. 슬픔과 기쁨은 아니었다. 그 둘은 양 극단에 있는 감정으로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극단적이지 않았다. 그저 나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저 그럼'의 어딘가 언저리에 존재하는 감정 같았다. 그 감정을 따라 가보니 우울한 물결이 조금씩 치고 있었다. 함께 있지만 어디에도 속해있지 못하는 기분.
아, 나 외로운 건가.
외로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