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다시 뵙고 싶습니다.
노신사 회원님과 연이 끊어지다
그러던 어느 날, 근무 중 팀장에게 다급한 호출이 왔습니다. 온갖 상스러운 욕과 함께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저를 혼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의 컴플레인 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 1년 이상 수업을 했더니, 맨날 똑같은 것만 하고, 익숙해져서 재미가 없다.
휘트니스 팀장이 회원 관리차 고객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온 얘기였습니다. 재미없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철렁했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지루해한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 했으니까.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 마지막 PT를 하고 나서부터 허리, 골반 쪽이 너무 불편해졌다.
- 몸이 이렇게 불편해져서 PT 하기가 겁난다. 당분간은 계속 PT를 좀 쉬겠다.
이어진 말은 더욱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 순간부터 죄책감에 빠진 일상이 시작됐습니다. 그제야 저는 ‘플라이오메트릭’ 형태의 운동이 어느 순간 노신사 회원님께 상해를 입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플라이오메트릭 운동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NCSA기준에 따르면 플라이오메트릭 실시 기준은 자기 체중*1.5배의 스쿼트인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권고일 뿐. 현장에선 상황에 맞게 완급조절을 잘하면 됩니다. 당연히 완급조절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실패라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60대의 몸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당시의 저는 완급조절에 실패했고, 그게 회원님의 불편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탄력, 유연성, 근력, 협응력이 떨어져 부상의 위험성이 높고, 같은 운동을 해도 회복이 더딥니다. 이건 일반인들도 아는, 굳이 근거를 찾을 필요도 없는 보통의 상식이니 당연히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 알고 PT 시간에 완급조절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회원님의 몸에 아주 큰 불편을 초래했고, 누구나 다 아는 그 당연한 사실을 실전에서 굳이 익혀야만 했습니다. 부족한 저로 인해. 이 얘길 제게 직접 하셨으면 좋았겠지만, 그 간의 정이 있으니 제게 직접 얘기하기가 너무 불편하셨겠지, 노신사 회원님 성격에 어지간하면 그냥 덮어주고 싶었을 텐데 몸은 낫지 않고 계속 아프니 이래저래 속앓이 하시다 그렇게 얘기하셨겠지. PT 하면서 염좌가 생긴 것도 몰랐고, 다쳤을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저는 PT 언제 하실 거냐고 재차 물어봤으니 남의 속도 모르는 제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싶었습니다. 왜 저를 피하시는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건강하자고 한 PT를 통해 삶의 큰 불편을 드려버렸으니 얼마나 죄송한지…. 더군다나 2012년 말부터 제 부상의 시발점인 허리 부상을 연이어 겪고 시름시름했던 저였기에 그로 인한 일상의 불편과 고통을 체감하기에 그 죄송함과 죄책감이 더욱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사실을 알고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현재 상태를 여쭸지만, 그것뿐. 노신사 회원님의 마음의 문은 이미 오래전에 닫혔습니다. 사과를 받아 주지도 않으셨지만, 받아 주셨다고 한들 회원님의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정말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눈 뜨고 있는 매 순간순간이 괴로웠고,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죄송했고, 자책으로 시작한 하루는 자책으로 끝날 뿐이었습니다.
미술치료 시간에 나타난 제 심리
2013년 봄, 저는 ‘미술치료’라는 심리 치료 방법을 노신사 회원님이 다치시기 전부터 배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트레이너로서 운동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PT 회원님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 살아오면서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PT를 하다 각 회원님과 인간적으로 교감하게 되면 때로는 회원님의 속 얘기, 인생 얘기를 들을 기회도 있고, 가끔 그런 얘길 해 주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웠습니다. 당시 모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6개월 과정을 수강 중이었습니다. 위 사실을 알게 된 2013년 따사롭던 봄날, 당시 나의 심리상태를 표현한 과제물이 있어 여기에 공유합니다.
1. 작품명 – 탄식
2. 작품 설명 - 먹물과 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는 것 자체가 한 번도 생각도 해보지 않은 파격이었습니다. 막상 그림을 그려보니 거부감이 든다거나 낯선 느낌 없이 그냥 붓으로 그림 그리듯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
위의 그림 왼쪽은 탄식, 절망감에 빠진 얼굴을 표현한 제 자화상입니다. 얼굴 자체가 흙빛인 것은 제가 체감하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세부적으론 눈은 붉은색을 칠함으로 눈의 충혈을 표현했는데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예민한 것을 뜻합니다. 눈 옆으로 보면 세로 모양의 주름이 있는데 주름 잡힌 미간을 표현한 것인데 이것 역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표현으로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볼 것은 입술인데, 입술의 색깔이 푸르스름합니다. 생생하고 건강한 느낌의 붉은 입술이 아닌 환자 같은, 생명력 없는 푸른 입술로 표현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잘 될 거야~ 괜찮아’라는 바람과 염원을 담은 마음으로 합장하고 있는 손을 표현했습니다. 왼쪽 그림에서 표현한 제 현재 상황이 호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른쪽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3. 그림의 배경 - 저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건강을 관리해 주는 ‘트레이너’입니다. 1:1 레슨으로 건강관리를 해드리는데, 꾸준히 제게 운동을 받아오신 VIP 회원님께서 1년 3개월 이상의 PT 이후 처음으로 PT 후 통증을 호소하셨습니다. 연세가 올해로 66세이시고, 원래 허리 쪽 측만 증세도 있습니다. 그간은 쭉 호전되다가 특정 레슨 이후 증세가 급격히 악화하셨습니다. 이렇게 운동으로 인해 건강이 퇴행이 돼버리니 나이, 병력이 있으신 관계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선 매우 많은 불편과 시간이 걸림을 알기에 그 사실이 너무나 죄송합니다. 1년 3개월간 함께 레슨을 해왔단 거 자체가 서로 신뢰가 쌓여있다는 얘긴데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 너무 과신했던 나머지 나태해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었고, 저를 믿고 자기 몸을 맡긴 분께 이런 결과를 드려 도의적으로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직, 노신사 회원님과의 결별
이직 최종 확정 후, 이직을 말씀드리고 더는 PT를 할 수 없음을 알려드렸습니다. 아마 이직을 하지 않았더라도 노신사 회원님과 PT는 불가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죄책감에 완전히 위축되어 노신사 회원님의 PT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설령 제가 자신이 있었더라도 노신사 회원님이 제게 다시 몸을 맡길 리도 만무했습니다. 이직 소식을 들은 회원님의 반응은 가타부타 별 반응 없이 미지근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습니다. 회원님은 나오지 않으셨고, 결국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1년 3개월가량 모시고 운동했고, 정도 들었고, 대역죄를 지은 죄송함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이 맘 불편해서 미리 피하신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아마 마지막 인사 때 뵀었더라면 죄송한 마음도 있고, 그간 제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기에 전 잘한 것 하나 없이, 분명히 눈물이 왈칵 터졌을 거 같습니다. 어쩌면 저, 노신사 회원님 둘 다 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신사 회원님 입장에선 제가 너무너무 밉겠지만, 그분 심성에 우는 절 보면 본인 역시 마음이 울컥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적 없이 마지막 근무는 그렇게 끝나 끝내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직 이후 몇 차례 전화를 드렸으나 전화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으셨고, 그 길로 더는 볼 수도, 소식을 전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이후
12년 말 시작된 허리 부상이 13년부터는 아예 만성화되고 이로 인해 제 삶의 전환점을 맞고 운동을 넘어 삶에도 흥미를 잃으며 자존감과 자기애도 바닥을 쳤습니다. 이 흔들림에 제 직업조차 놓을 뻔했지만 몇 년의 방황을 거치면서도 트레이너로 쭉 살고 있습니다.
아마 노신사 회원님과의 그 일이 아니었다면 트레이너로 살아온 지금까지 PT를 하면서 좀 더 많은 회원님에게 상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쩌면 문제가 커져서 그때보다 더한 일을 겪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랬다면 트레이너 삶에 있어 굴곡이 훠~얼씬 더 컸을 것입니다.
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벌써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신사 회원님이, 또 그 수업시간이 생각납니다. 다만, 제 번호는 아직도 그대로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약 없이 기다리지만, 지금껏 그랬듯, 전화 주실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 앞번호가 011이었는데….
노신사 회원님은 48년생이니 이제 70이 넘으셨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노신사 회원님 역시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때보다 연로하셨겠지. 살아 계실 때 연이 닿아 ‘길’에서라도 뵙게 된다면, 그때 다치셨던 몸은 어떠신지 다시 한번 여쭤보고, 꼭 다시 한번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제 부상 경험과 노신사 회원님을 다치게 한 이후로는 PT 하다가 잘못돼서 회원이 불편해졌단 얘기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매일 PT 시작 전 회원님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회원님의 연령에 따라, 현 상황에 맞춰 운동 강도를 매시간, 매 세트 조절합니다. 저는 노신사 회원님과의 PT 사고 이후 회원에게 투혼을 강요치 않습니다(성실은 요구합니다). 그래서 가끔 다른 트레이너와 달리 푸시가 없다는 말을 회원님들께 듣기도 했습니다.
회원님의 운동 동작, 당일 컨디션 등이 제 보기에 편안치 않으면 전 무조건 기본으로 갑니다. 기록이나 회원의 한계에 도전은커녕, 응용 운동도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습니다. 기본 동작에서 횟수나 무게 정도만 조절해서 강도를 높여 달란 회원의 요청이 있어도 몸이 올라오는 게, 풀리는 게 보이지 않는 이상 거의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냥 현 상황, 현 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뽑아내려 합니다. 그 정도로 PT를 할 때 조심, 또 조심합니다. 마치 연로한 부모님이 다 큰 성인 자식에게 다닐 때 차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으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신사 회원님의 영향력 아래 pt수업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