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생활 중 아직도 가장 죄송한 노신사 회원님-1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습니다.

by 동네 트레이너

트레이너로 살아온 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제 부상 외에 큰 굴곡은 없으나 평생 잊어서는 안 될 한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 실수 덕분에 아마 오늘날까지도 PT 하면서 큰 굴곡 없이 지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신사 회원님과의 만남


호텔 휘트니스에서 일하고 있던 2012년 초, 새해 시작과 동시에 한 노신사 회원님의 PT를 맡게 되었습니다. 48년생이니 당시 나이가 65세였고, 운동 목표는 건강관리였습니다. 특이점이 있다면 건강관리가 절실하거나 PT의 필요성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냥 PT가 궁금해서(?) 혼자 트레이너 생활 중아직도 가장 죄송한 노신사 회원님 운동하기 심심해서(?) 하셨다는 정도.


호텔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위상이 예전 같진 않지만 일단 고급, VIP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 특성상 회원들 역시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 그리고 더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주로 옵니다. 저는 자기보다 힘없고, 어린 사람에게 반말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지역 유지, 사업가, 전문직들을 2년간 일상적으로 봤습니다(물론 이런 사람들은 호텔뿐만 아니라 나이, 지역, 장소 상관없이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노신사 회원님은 그러시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렇게 연을 맺었고, 1년 3개월간 함께 PT를 하게 됩니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그때는 물론, 지금도 저를 잘 모르거나 가깝지 않은 누군가 반말 찍찍하면 아주 싫습니다. 또, ‘내(결제자) 덕분에 네(서비스 및 상품 제공자)가 먹고 산다’ 마인드로 행동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우선 절 어떻게 알길래 반말, 하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돈을 내는 것도 본인의 필요로 제가 가진 시간, 지식, 경험을 교환할 뿐인데 말입니다. 저는 생글생글 잘 웃고 순하지만, 반말, 또는 저런 형태의 행동이 입력되는 순간 욱하며 돌변합니다. 직원으로 일할 때도 이런 사람들이 등록하려 하면 안 받으려 노력했고, 기존 고객이 갑질 하면 싸워서 내쫓고 환불해 주고, 의도된 무성의한 서비스로 컴플레인도 종종 걸렸고, 실컷 화 다 내놓고 봤더니 제가 실수한 게 자명한 경우 뒤늦게 고객에게 연락해서 사과한 적도 있는 정말 별로인 직원이었습니다. 직원일 때도 저 모양인데 지금은 제가 사장이니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독자 여러분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런 면만 적어서 그렇지, 저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절.대 피해를 안 주려 하며, 매너 좋고, 배려가 밴 분들에겐 제 영혼까지 모아 친절하게 배려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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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사 회원님의 PT 초창기 – 스트레칭 + 재활운동


노신사 회원님의 PT 초창기 땐 가동범위를 늘리는 스트레칭 + 재활운동 위주로 했습니다. 크게 다치거나 아픈 데는 없으셨지만, 신체는 소모품이고 연세가 있다 보니 노화로 인한 불편함 및 움직임이 원활치 않아 그런 것들을 우선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2~3개월에 걸쳐 가동범위를 넓히고 재활운동 위주로 PT를 했습니다. PT 하시곤 몸이 매우 편해졌고, 밤에 잠이 잘 온다며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는데 정말 신나서 성심성의껏 힘닿는 한 PT를 했습니다. 트레이너를 춤추게 하는 것은 수업내용이 좋다는 칭찬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초반 3개월가량은 운동할 수 있게끔 몸을 만들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의 PT 중반기 – 맨몸 운동


운동할 수 있는 몸이 세팅된 4개월 차, 근력운동의 비중을 높여가며 맨몸 운동을 지도했습니다. 스쿼트, 런지, 스텝 업, 무릎 푸쉬업, 보조 턱걸이, 플랭크 등을 알려드리고 계속했습니다. 푸쉬업과 턱걸이는 난이도를 낮춰서 하는데도 근력이 잘 안 늘었습니다. 반면 스쿼트, 런지, 스텝 업, 플랭크는 잘하셨습니다. 점차 반복 수, 세트 수를 높여도 정말 잘 따라오셨습니다.


스쿼트를 예로 들자면 5개씩 3~4 set로 시작했는데, 추후 20개씩 10 set 하셔도 거뜬히 해내셨습니다. 이 정도가 되자 제가 보기에 근력, 근지구력, 협응력이 꽤 올라오신 것으로 판단됐고, 다음 단계를 구상하게 됩니다.


노신사 회원님의 PT 후반기 – 플라이오메트릭 추가


6개월 이후, 플라이오메트릭(plyometric) 형태의 운동을 추가했습니다. 플라이오메트릭을 쉽게 얘기하자면 몸의 탄성, 탄력을 이용하는 운동입니다. 제자리에서 하는 점프 스쿼트, 박스 점프 스쿼트, 제자리에서 하는 점프 푸쉬업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해본 적이 있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속근의 비율이 저하됩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애초에 다이나믹한 동작이나 운동을 할 일이 없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 플라이오메트릭류 운동의 목적은 바로 신체 탄력과 순발력을 키우는 운동이고, 무엇보다 속근의 활성에 목적이 있는 운동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운동의 효과가 누적되면 외모도 더 젊어집니다. 속근 활성으로 인한 몸의 전반적인 탄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회원님의 회춘을 돕고자 PT 중에 플라이도 메트릭 운동을 조금씩 곁들였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이것도 잘 따라오셨습니다. 처음부터 시도했으면 다쳤을 수도 있겠지만 반년 이상 가동범위, 유연성, 근력, 근지구력, 협응력을 키워서 가능했습니다. 60대의 몸도 가능하구나! 를 직접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1년 이상을 모시고 운동하다 보니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졌습니다. 한참 뒤 알게 된 사실인데 제 나이 또래의 아들이 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들 생각이 나서 더욱 잘해 주신 것 같습니다. PT 현장을 넘어, PT 현장 밖에서 물심양면 저를 챙겨주셨는데 몇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과의 비하인드 스토리


어느 날, 골프는 배워두면 쓸 곳이 있으니 골프 레슨을 받으라셨습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예~ 하고 대답했는데 며칠 뒤 정말 골프 프로를 붙여 주셨습니다. 근데, 이 골퍼가 당대 가장 유명한 현역 프로였습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찾는 곳이 너무 많았고, ‘돈’만 있어선 애초에 접근도 불가능한 그런 골퍼를 자신의 돈과 친분으로 제게 붙여 주신 것입니다. 골퍼와 제가 레슨 시간을 서로 맞추는 단계까지 갔고, 그때서야 노신사 회원님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고 뒤늦게 거절했지만 이미 노신사 회원님의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했습니다. 애초에 저는 골프에 관심이 없었고, 무엇보다 타인의 돈으로 뭘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어느 날은 본가를 가게 되어 며칠 PT를 못 했습니다. 그 전날 전화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에 음식을 포장 예약해 뒀어요. 가족과 함께 드세요.”


휴가 당일, 음식점에 들러 음식을 찾았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차 없는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양손 가득 움켜쥐고 정말 끙끙대며 본가로 갔습니다. 택시 타야 했는데…. 본가 도착해선 제 회원님이 챙겨주신 것이라며, 식사상에 음식을 떡 하니 자랑스레 올렸습니다. 제 직업에서 이렇게 인정받는다고 거드름 피우며 있는 힘껏 잘난 체를 했습니다. 누구도 표현은 않았지만, 가족들 눈에도 저 상황의 저는 정말 재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다른 트레이너들 몰래 틈틈이 20, 30만 원씩 용돈을 주셨습니다. 처음 돈을 주실 때는 매우 부담스러워서 저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거절에 성공했고, 이후 몇 차례 더 거절에 성공했지만 그런 시도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받을 때까지 거듭 챙겨주셨습니다. 몇 번 거절하다가 딱 한 번을 받고 보니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부담도 덜해지고 그 상황이 익숙해지고 기다리게 됩니다.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받다 보니 대여섯 차례는 받았습니다.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은 될 때까지 하는구나, 자존심 내세우며 유난 떨던 저도 이렇게 돈에 타협함을, 저도 정말 별 볼 일 없구나’ 이런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함께 일한 동료 트레이너들은 물론, 지금까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2명밖에 없습니다. 저와 아내. 그래서 이 얘기는 쓸지 말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존재했던 일이고, 이분이 제게 어떻게 대해주셨는지 감사를 표현하는 글이니 그냥 적기로 했습니다.


트레이너로 살면 회원으로부터 크든 작든 금전이나 선물을 종종 받습니다. 그리고 그걸 SNS나 주변에 자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운영 측면에서 마케팅을 위해 적기도 합니다. 주관적인 부분이니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고 생각의 차이인데 이런 현상에 대해 제 생각을 좀 더 적고자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왜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라고 애정 갖고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길 권하시던 몇몇 회원님께도 대답이 될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참 많은 선물을 받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는 절대 SNS에 올리지 않습니다. 제가 받은 것을 올리게 되면 선물해 주신 회원님께는 더욱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마음 써주신 것에 대해제가 공개적으로 고마워하고 감사 표현하면 선물 주신 분께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일까요? 이런 측면에선 받는 족족 올리고, 감사를 표하면 분명 좋을 것입니다. 근데, 제가 이런 걸 SNS에 올리고, 주변에 자랑하는 순간 이것을 접한 소비자 중 일부는 트레이너를 PT비 외의 ‘돈’으로 사야 한다고 인식합니다.


그 소비자 중에서도 현재 제 회원이 그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되면? 회원은 제게 금전적인 표현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느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서비스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000년대 이전 공공연한 관행이던 촌지, 뇌물처럼 말입니다. 그게 싫어서 애초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미 PT 비를 지불한 회원이 추가로 지급해야 할 비용은 없습니다. 저는 PT 비를 선불로 받았으니, 믿고 맡겨주신 회원님께 PT 비 이상의 서비스로 보답해야 할 제 의무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저도 선호하는 선물은 있습니다. PT 중, 또는 종료 후 종종 받게 되는 손편지는 정말 좋아합니다. 자기 마음, 생각을 담아 시간 들여 손수 작성한 회원님의 글을 보면 회원님의 음성이 지원되며 회원님과 더 깊게 교감이 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니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편지를 주신 거고, 또 제 노력을 감사히 여겨주시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좋고, 아주아주 행복합니다. 저는 시간이 들어간, 애정이 들어간, 마음이 들어간 편지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시간, 마음이 담긴 무언가를 받게 되면 제가 기분이 너~~~무 좋으니까 이때는 마구마구 SNS에 올리고 싶습니다. 그 결과, 책에는 몇 편 들어갔네요. ㅎㅎ 이런저런 선물을 SNS에 절대 안 올리는 것과 별개로 지금은 저도 변했습니다. 10여 년 전보단 더 세속적인 속물이 됐습니다. 아마 노신사 회원님처럼 바라는 것 &청탁 없이 감사의 표시로 주실 경우 거절 않고 흔쾌히 받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 그렇게 저는 그분의 인간성뿐 아니라 ‘돈’에도 그렇게 중독되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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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부는 12년의 휴무 날. 노신사께 급히 전화가 옵니다. 약속 확인 후 저녁 먹자 하시고는 제 자취방에 차를 보내 픽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임피리얼 팰리스 뷔페로 데려가선 식사 중에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헬스장 해볼 생각 없어요? 노는 상가도 있고, 돈 받을 생각도 없어요. “


골프 레슨 사건을 통해 종종 하시는 엉뚱한 말씀은 빈말이 아님을 경험했기에 이때는 뒤도 돌아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습니다. 이 식사 이후 추후 몇 차례 이야기가 더 나왔지만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분 성격상 제게 뭘 바라지도 않으셨겠지만 전 남의 돈으로 뭘 한다는 것이 너무너무 꺼림칙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같습니다. 제안이 온 2012년 당시에도 제 꿈은 제 업장을 가지는 것이었지만, 경험적으로 준비가 덜됐다 여겼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적으로 좀 더 성장하고 난 뒤, 제 돈으로, 업장 운영은 생계보단 취미 삼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부상을 겪고 4년여를 방황했고, 한참이 지난 2019년이 되어서야 제가 꿈꾼 피티샵을 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그때’가 아닌 ‘지금!’의 제 결정에 만족합니다. 이 정도로 다방면서 물심양면 마음을 써주신 분이셨습니다.


긴급상황 : 노신사 회원님의 PT 거부


PT 하신지도 만으로 어느덧 1년을 훌쩍 넘어 1년 3개월 이후의 어느 날부터 회원님이 PT를 안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PT만 안 할 뿐 운동 및 사우나는 매일 나오셨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 1회는 수업을 하셨던 분이, 출석은 하시는데 수업을 계속 차일피일 미루셨습니다. 조금 쉬었다 하고 싶다 하셔서 좀 기다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별말씀이 없으셔서 언제 하실지 다시 여쭤봤더니 좀 더 쉬었다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꺼림칙했습니다. 그리고 수업만 안 하시는 게 아니라 절 따스하게 보시던 눈빛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답답하긴 했지만, 더 물어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짚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연인으로 치면 권태기라는 표현이 딱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속절없는 나날이 이어져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트레이너인 ‘저’를 멀리하시는 이유도 모르는 채 불편한 나날들이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과 연이 끊어지다


그러던 어느 날, 근무 중 팀장에게 다급한 호출이 왔습니다. 온갖 상스러운 욕과 함께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저를 혼냈습니다. 노신사 회원님의 컴플레인 때문이었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트레이너 생활 중 아직도 가장 죄송한 노신사 회원님-2>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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