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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Dec 19. 2019

마음 작명소 : 추억

거기에 '섬' 이 있었다. 



학생일 땐 연대동문에 살았다. 자취방에서 열심히 뛰어가면 상본이나 상별까지 5분이면 충분해서 눌러 앉았다. 대신 물가가 비쌌다. 동문 쪽은 교수들이 좋아하고 어학당 다니는 외국인들이 많은 동네라서 비싸다는 얘기가 돌았다. 거기에 <섬>이 있었다. 



나는 <섬>의 간판을 좋아했다. 정사각형 모양의 간판은 호롱불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간판에는 붓으로 쓴 듯한 옛체로 '섬', 딱 한 글자만 써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밤길에 <섬>의 간판을 보면 약간 몽롱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섬, 이라는 이름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좋았다.



몇 번 갔었다. 그때의 <섬>은 술집이었다. LP판과 사진이 가득하고,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술집. 나는 잘 모르고 그는 잘 아는 노래가 계속 나오는 술집. 지하의 차가운 공기때문에 소매 끝을 연신 잡아내려야했던 술집이었다. 동문에 있었으니 당연히 술값이 비쌌다. 학생이라 더 그랬다. 안주없이 술만 몇 잔 마시곤 했다. 어느 날은 주인이 연말에 만들었다며 가게 안을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각각 나눠줬다. 와, 너무 예뻐서 못쓰겠어. 그는 예쁘니까 둘 다 나 가지라고 했다. 한장은 간직하고 한장은 아까워 말고 쓰라고. 



엽서를 받았지만 술값은 여전히 비쌌고, 좋아하는 분위기지만 자주 갈 수는 없었다. 다음에 또 가자, 또 가자, 말만 하다가 우리는 헤어졌다. 섬에서 받은 엽서 두 장은 아직도 내 서랍에 그대로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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