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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갬성팔이 Feb 19. 2022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해체주의 디자인의 시작점. 레이 카와쿠보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시작


1976년 건축가 타카오 가와사키와 협업하여 탄생한 꼼 데 가르송 첫 매장


  레이 카와쿠보는 게이오 대학에서 문학과 미술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가장 큰 섬유화학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섬유소재의 패셔너블한 이미지 부각해주기 위해 매스 미디어의 광고를 제작한 일을 시작으로 패션계 업종 관계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일본 최초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게 되었죠. 레이 카와쿠보의 현주소에 머물게 하지 않고 디자이너를 꿈꾸며 자신의 창작물을 만드길 희망했습니다. 그녀는 부인복을 시작으로 브랜드 없이 활동하다가 꼼 데 가르송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레이 카와쿠보는 도쿄에서 첫 번째 여성복 컬렉션을 개최했고 건축가 타카오 가와사키와 협업하며 꼼 데 가르송 매장을 오픈하였습니다. 레이 카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 매장은 일반 의류매장과 성향이 달랐습니다. 상품성을 부각하며 단순히 옷만 사고파는 장소가 아닌 옷을 갤러리의 미술작품이나 인테리어 장식의 일부처럼 전시했었죠. 현시점에 보았을 때 쇼룸과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의 쇼룸은 온라인 판매, 과거엔 오프라인 판매가 활성화했다는 점이기에 레이 카와쿠보의 선택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꼼 데 가르송의 디렉터 레이 카와쿠보


나는 단지 나의 옷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액세서리와 패션쇼, 매장, 심지어 나의 작업실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단지 바깥으로 나온 미완성의 솔기나 검은색만이 아닌 꼼 데 가르송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 레이 카와쿠보 -




무채색을 한 미완성의 미는 양날의 검



  1980년대 유럽 패션계에 레이 카와쿠보는 당시 연인이었던 요지 야마토모와 함께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패션쇼에 참여하며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단순히 동양인 최초라 화제성을 이끈 게 아닙니다. 그동안 유럽인들이 추구하는 멋과 정반대에 있는 옷들을 소개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죠. 유럽의 전통 복식을 바탕으로 옷은 잘 재단해야 하며 몸에 핏 하게 맞아야 한다는 서구 미학의 원칙을 해체하며, 파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아카이브 의류가 '레이스 스웨터(Lace Sweater)'입니다.


1981/82 꼼 데 가르송 F/W 컬렉션 비정상적으로 구멍이 나고 찢어진 스웨터 ‘레이스 스웨터(Lace Sweater)’ & 레이어드 룩


레이 카와쿠보의 레이스 스웨터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라인을 강조하는 기존의 레이스와는 반대되며 역설적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잘 테일러링 한 옷을 라인에 맞추어 수축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부셨으며 라인을 들여내지 않도록 디자인하여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줬습니다. 의도적으로 구멍을 내고, 찢고, 손상시켰죠. 또한, 팔 시보리를 길게 만들어 일부분을 접어 올리게 한다거나 내의가 스웨터의 구멍 난 부분을 통해 보이고 밖으로 나오게 하는 최초의 레이어드 룩을 선보였죠. 색상도 눈여겨 볼만 점입니다. 지금이야 무채색 옷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엔 화려한 색상의 옷이 많았습니다. 레이 카와쿠보는 최초로 무채색으로만 컬렉션을 진행하였고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는 장례식에만 검은색 옷을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레이 카와쿠보의 행보는 유럽인들의 고정관념을 해체하여 물질의 개념을 파괴하였으며 패션쇼 참석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겁니다.


  훗날, 레이 카와쿠보의 패션쇼는 1960년대 종래의 로고스 중심주의적인 철학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주장한 독자적인 중심 사고방식인 해체주의(Deconstruction)를 패션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패션에서 해체주의는 일반적인 규칙을 거부하고, 모든 관습들을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해체주의는 인체의 비례와 미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옷의 형태와 구조를 바꾼 형태죠. 이는 안티 패션(Anti Fashion)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안티 패션이란 패션에서 해체주의와 비슷한 의미로 획일화된 기업 사이드에서의 강압적인 패션을 거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개성적인 패션, 자유화된 패션 등으로도 불렸죠. 유행 현상으로서의 패션에서 드롭아웃한 자립된 미의식에 의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엔 이러한 현상들을 히피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죠.


까마귀족


  언제나 파격적인 행보엔 찬사와 비판이 양날의 검처럼 함께 따라오는 듯싶습니다. 80년대엔 여성의 라인을 들어내고 남성은 월스트리트의 파워 슈트, 파스텔 슈트가 유행한 시기였죠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랄프 로렌 같은 디자이너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패션 관계자들은 레이 카와쿠보의 행보를 기존 패션의 엄격히 확립된 질서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죠. 대부분의 보수적인 참석자뿐만 아니라 국제 패션 언론도 충격을 받았으며 레이 카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을 '히로시마 시크(Hiroshima Chic)', '포스트 원자(Post Atom)'이라고 조롱했습니다. 보수적인 패션 관계자들은 초기 레이 카와쿠보의 꼼 데 가르송의 열광한 신봉자들을 까마귀족이라 놀렸죠. 90년대에는 아예 인체 곡선과 정반대 되는 옷을 만들어 휴고보스와 비교되며 주요 미디어로 부터 1)"콰지모도(Quasimodo)"라는 조롱 썩힌 별명을 얻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꼼 데 가르송하면 하트 로고가 붙어 있는 옷만 생각하시지만 사실 하트 로고는 여러 라인 중 하나일 뿐이죠. 여러분이 보기엔 80년대 꼼 데 가르송의 옷 어떠신가요? 혹자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너무나 멋있고 아름답습니다. 또한 80년대 꼼 데 가르송 옷은 요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홍대 같은 핫플레이스에서요. 레이 카와쿠보의 영향력이 대단하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레이 카와쿠보는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력을 줬으며 당시 그녀의 스타일 명맥을 다른 이들이 함께 이어감으로 해체주의는 발전합니다.






1) 콰지모도 :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혹은 노트르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기형적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멸시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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