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을 바쁘게 내달리던 이 골목길, 하루 일을 끝내고 날 기다리는 어린 딸들 만날 생각에 오르막도 내리막도 힘든 줄 모르고 빠른 걸음으로 종종거리던 이 골목길을 이제는 천천한 걸음으로, 지 집 저 집의 대문과 담장과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정원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며 걷는다.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을 지닌 채 처마를 맞대고 살았던 이웃들이 남기고 떠난 텅 빈집들을 좌우로 거느리고 있는 이 골목과 이별 여행 중이다.
주황의 단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아름다운 만추의 풍경을 선사한 것으로도 충분한데, 나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의 입까지 만족시켜 준 큰 감나무를 두 그루나 키우고 있던 소설 작가님 댁, 지금의 내 반려견 산이가 오기 전 우리집에 살았던 진도견 용이와 결혼하여 예쁜 강아지를 세 마리나 낳아 주었던 암캐 진도가 살았던 집, 불의의 화재를 입은 후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으로 다시 단장하고 앙증맞은 장미넝쿨로 담장을 꾸몄던 집 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재건축이라는 폭력 앞에 자신의 운명도 곧 다할 것임을 알 턱이 없는 이 집들이.
30여 필지 100 가구 이상이 살던 이 골목길에 이제는 4 가구의 집에만 밤에 불이 켜진다. 이 골목길에 한 때나마 영혼을 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대낮에도 소름이 끼칠 만한 풍경이다. 허물어지거나 허물어뜨린 담장, 외부인에 의해 억지로 뜯겨진 대문이며 현관,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갖가지의 살림살이들로 어지러운 집 주변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유쾌하지 않다는 느낌보다 새로운 삶의 터에 깃들일 그들의 소소한 일상을 걱정스럽게 한다. 남향의 언덕받이에 위치한 이 동네는 창으로 들어 오는 따뜻한 햇볕이 집집마다 큰 자랑이요 위안이었는데, 주인이 미처 닫지 못하고 떠난 현관문이며 창문들은 겨울 내내 바람 따라 흔들리고 삐걱거려, 이 골목과의 이별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내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한다.
30 세, 내 아름다운 나이에 들어온 집, 봄이면 자주색 라일락 항기를 안겨준 집, 큰 바위 사이사이에서 해마다 보라색 붓꽃을 피워내던 집, 3,000원 주고 사다 심은 새끼손가락처럼 가늘던 대추나무가 자라서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대추를 주렁주렁 매달아 내 딸들에게 상큼한 풋대추를 맛보게 한 집, 나무젓가락보다 가늘게 생긴 고추모종과 토마토모종이 마당에 넉넉히드는 햇살로 우리집 식탁을 신선하게 채우게 해 준 집, 늦가을이면 옆집 나무에서 수확한 호두며 감으로 이웃 간의 정을 느끼게 해 준 이 집과도 이제 이별해야 한다.
지구 환경의 파괴가 내 혈육이 당하는 침탈처럼 느껴져 의식주생활을 영위함에 환경과 생태를 내 육신의 안일보다 더 높은 자리에 두고 생활하게 된 것도 이 집에서 시작되었다. 환경전문잡지 <녹색평론>과, 우리 인류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대로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라다크를 소개한 <오래된 미래>를 읽고 내 삶의 큰 지향을 마련하게 된 것도 이 집에서였다.
열대우림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놀이터요, 학교요, 친구인 아이들이 전기톱의 굉음과 함께 모두 잘려 나간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도 그 아이들을 죽여 나가는 간접 살인의 행렬에 서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을 한 것도 이 집에서 였다.
외국생활을 하는 큰딸이 조국이 그리울 때 떠올릴 엄마의 배경이 되는 집, 편안한 옷을 걸치고 분주히 자신을 위해 최고의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의 배경이 우리집 부엌일 텐데, 내가 이 집을 떠나고 이 집이 개발의 광풍에 허물어지고 나면 내 딸의 엄마의 배경은 어디가 될 것인가? 내 작은 딸이 태어나고 내 큰딸을 결혼시킬 때의 기쁨과, 내 딸들의 가슴시린 첫사랑의 눈물은 이제 새로운 풍경의 주거지에 깃들어 살게 될 사람들에게 한 줄기 위안의 바람이 되어 주리라. 서툰 기타 반주에 맞추어 흥얼거린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 곳에 새로이 뿌리내릴 나무들의 속삭임이 되리라.
보통 때는 해가 남중하는 시간을 전후하여 내 반련견 삽살개 산이와 산책을 하는데, 오늘처럼 매섭게 추운 날은 해가 떠오른다 싶을 즈음에 산책을 시킨다. 긴긴밤 혼자 마당에서 추위에 온몸을 얼마나 떨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이 골목에서의 산책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아는 나는 추위보다 더 아려오는 아픔으로 이 골목을 걷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사철나무의 새잎이며 물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개나리 나뭇가지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힘차게 달리려 버둥거리는 산이를 보며 안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이곳에서의 마지막 일상으로 돌아간다.
앞집과 뒷집에 한껏 부풀어 오른 목련꽂 봉오리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부르고 있다. 넓고 평평한 마당을 가진 집 현관에 의젓하게 서있는 동백나무는 수백 송이 진홍색의 꽃봉오리로 그래도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이 골목에서 그들의 생애 어느 때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였으나, 사람들의 이주와 함께 뒤숭숭했던 마음의 길고양이들도 불룩한 배를 가지고 새 터전을 찾아 가리라. 삶이란 그리 쉽게 끝나는 것도 아니요, 또 끝낼 수도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