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좋아했던 친구들은 다른 신발들보다 운동화를 좋아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만든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보던 패션 잡지를 대충대충 넘기다가도, 운동화 신은 모델이 등장하는 순간, 페이지를 넘기려던 검지 손가락이 잠시 동작을 멈추곤 했다. 하이힐이 주는 위태로움 보다는 운동화의 쿠션감과 플랫한 바닥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고, 어떤 옷차림이라 하더라도 꾸민 듯 안 꾸민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은 이성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있었다.)
내가 만났던 그녀들이 운동화를 주로 신었던 것은 내 취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데이트를 할 때마다 핸드폰 만보기의 게이지를 꽉 채울 만큼 많이도 걸어 다녔기 때문에, 그녀들은 어쩌면 데이트 전 날 운동화를 가장 먼저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뚜벅이로 데이트를 하곤 했다. 그래서 생겨난 에피소드가 정말 많은데, 이를 테면 여자 친구를 흘겨보던 변태 같은 사람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고, 어떤 때는 여자 친구의 차를 타고 싸워서 ‘내려야 하나…?’하는 난감한 상황을 만난 적도 있다.
한 번은 S와 겨울 제주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정말 오랜만에 떠난 제주도였고, 둘 다 운전면허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항 주변에 숙소를 잡고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을 계획해, 이동하기로 했다. 첫날 우리는 사려니 숲에 가고 싶어서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 날은 폭설이 와서 사려니 숲 입장이 통제되어 있었다.
결국 자주 오지도 않는 버스를 한참 동안 기다리다가(물론 기다리는 시간도 좋았다.) 아무 버스나 타고 동쪽 끝, 섭지코지로 이동했다. 어느 곳이나 신기한 제주였기에, 뭐든 좋았고 신이 나 있었다. 원하는 곳을 간 것은 아니었지만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를 뚫고 달리는 버스의 창 밖으로 수평선 위로 낮게 깔린 구름이 다홍빛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 풍경을 맨 뒷자리에 앉아 바라봤지만, 아쉽게도 S는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노을이 수평선을 향해 떨어지듯, 그녀의 머리도 내 어깨 위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하고, 새근새근 잠이든 그녀의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도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 후, 그동안의 미안한 마음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래서 이제는 뚜벅이 여행을 하기는 어려워졌고, 더 이상 내 옆에 앉아있는 친구가 어떤 종류의 신발을 신었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유별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편안한 여행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도 예전에 했던 나의 뚜벅이 여행이 생각난다. 아마 착각일 확률이 높지만, 그 여행 속 내 모습이 영화 <클래식>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주인공처럼 멋있고 애틋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쿠션 삼아 걷다가, 버스를 타고 노을을 바라보고. 지하철에서 손을 잡고 조용히 귓속말을 하던 순간의 떨림은 나뭇잎처럼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그래서 뚜벅이 여행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날의 뚜벅이 여행은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체코에서 사 개월쯤 생활했을까. 육지가 지겨웠다.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강원도로 가서 바다를 보면 될 일이겠지만, 체코는 유럽 대륙에 정가운데ㅡ애매하긴 하지만, 체코 애들이 그렇게 말했다.ㅡ 위치해있어서 바다가 굉장히 멀었다.
너무 멀어서 학기 중엔 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우연히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사진 한 장(네덜란드 해안가에 누워있는 바다표범 사진이었다.)을 발견하곤, 무언가에 홀린 듯 네덜란드 암스테르담Amsterdam으로 떠나게 되었다.
무작정 여정을 떠나긴 했으나, 계획에도 없는 지출이어서 저가 항공보다 더 저렴한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를 타기로 했고, 그렇게 왕복 20시간의 뚜벅이의 “사서 고생” 여행의 막이 시작되었다.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았다. 첫날은 그럭저럭 숙소에서 편하게 잠을 잤다. 다음 날도 같은 숙소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어서 가격이 몇 배는 더 뛰었기 때문이다. 다른 숙소도 더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금요일 암스테르담의 숙소 가격은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숙소가 없어진 나는 한참 동안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득 그럴싸한 답이 떠올랐다.
“어차피 바다 보러 온 거, 잠자는 거만 포기하고 밤새 바닷가로 달려가면 숙소 값은 물론이고, 바다로 가는 기차값도 아낄 수 있지 않나?”
거기다가 바다 주변에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침낭까지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그렇게 또 다른 “사서 고생” 결정을 한 뒤, 자전거 렌탈샵에서 자전거ㅡ암스테르담에서만 타야 할 것 같은 무겁고 둔탁한.ㅡ를 빌려 에그몬드Egmond aan Zee 해변으로 떠났다.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또다시 왕복 80km의 여정을 떠나려고 하니 시작부터 피곤했다. 마지막으로 중국음식점에서 센 불로 짧은 시간 볶아낸 국수로 연료를 채우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끽-끽!’
자전거가 굉음을 냈다. 아마도 자야 할 시간에 밤길을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중간에 운하를 만나 배 위에 몸을 싣기도 했으며, 긴 뿔이 달린 소를 만나 놀란 자전거가 왜 자신이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이런 쌩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틀간 나에게 고용된 자신의 운을 탓해야 할 것이었으니까.
밤이 더 짙어지고,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빛도 점점 줄어들었다. 잠깐잠깐 만나는 가정집의 불빛과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반가울 정도였다. 오랜 라이딩과 어두운 시야 덕에 눈이 뻑뻑해질 때쯤, 졸린 나를 깨우듯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강한 바람이 이어폰과 귀 사이의 빈틈을 찾아 들어왔다가 귓바퀴를 따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덜란드는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여서, 자전거가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강해진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 바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은, 강한 바람에 더 이상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바람과 고철 자전거, 눈꺼풀이 무거워진 탓에 내 삶도 이렇게 무거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 무거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등 뒤로는 달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기도 했다.
자동차를 타고 갔다면 느낄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맞으며, 나와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달리다 보니, 어느 만화영화 속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힌 것만 같은 듯한 기분이었다.
암흑 속에서 소리라도 쳐야 어둠에 삼켜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에 내가 고민하던 것들을 미친 사람처럼 크게 외치며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쳤다. 목이 쉴 듯 크게 외쳤다. 아버지에게 정답을 알려달라고 울부짖는 어느 래퍼의 노래처럼 간절했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고 했던가. 해결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간절하게 울부짖고 모든 것을 쏟아내자, 어느 순간 고민에 대한 걱정도 밑바닥을 보이며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음이 평안해져 오자, 고민에 대한 해답들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결국, 마음의 짐을 덜고 고민에 대한 답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느낀 무게와 피로 덕분이었다.
“사서 고생”으로 의도치 않게 고민을 해결한 밤이 지나고, 마침내 에그몬드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마을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등대에 올라가 풍경을 바라보았다. 앞에서는 달이 파도를 맘껏 밀고 당기고 있었고, 뒤에서는 마을 지붕과 바닥이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신비로운 새벽이었다.
다시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끔찍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시 되돌아갔고, 되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이 도시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곤 버스를 탔다. 눈을 감았다 뜨니 순간이동한 것처럼, 어느덧 10시간이 훌쩍 지나 퉁퉁 부운 눈으로 다시 체코에 도착해있었다.
편안함을 버린 나의 뚜벅이의 여행은 “사서 고생”이 맞았다. 물론, “사서 고생”이라는 말 앞에는 늘 “젊어서 고생은”이라는 말이 따라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고생스러운 것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편안함이라는 것은 분명 좋은 것임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젊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번거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행동도 때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사서 고생” 할 수 있는 “젊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도 비슷한 말을 한다.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는 청년은 이미 노인이다.”라고. 그의 말처럼 청년들은 남들이나 내가 가진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어리석은 일을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어리석거나 불필요해 보이는 행동들은 우리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며, 마침내 변화를 일으켜내고야 만다.
나에게 뚜벅이 여행은 어수룩하고 또 어리석었지만, 늘 애틋했으며 때론 해답을 찾아오기도 했다. 사실, 최근 들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편안한 것만 찾아다니며, 뚜벅이의 존재를 조금씩 잊어가는 듯하다.
생각과 몸이 어딘가에 콕하고 못 박히는 것 같은 요즘, 어리석지만 가장 젊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다시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내가 사랑했던 그 뚜벅이의 모습으로.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 : 유럽 전역을 다닐 수 있는 저렴한 버스로 화장실도 있고 중간중간 핫초코나 커피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나, 이름처럼 학생 전용 버스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