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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Feb 15. 2023

힐링하려는 이에게 전하는 편지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와 소크라테스의 <변론>


떠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퇴사하겠습니다, 같은 힐링 도서가 한동안 많이 팔렸다. 내가 약자란 걸 알고 끊임없이 부려먹으려는 회사를 향해 한방을 먹이는 듯한 이 말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꽤나 매력을 느낄 만했다.     



겉으론 웃으며 지내지만 사실은 위계와 허세에 눌려 숨 막힐 일이 부지기수인 직장에서 당당하게 사표를 던지는 일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빙빙 도는 루틴의 굴레가 버거운 걸 알면서도, 쉬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자기 체념의 현대인들에게는 퇴사 이후의 완전히 다른 환경이 불감당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직장에서 받는 시장임금보다 복지로 얻는 사회임금이 턱없이 낮은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처럼 그저 그런 종인 줄 알았던 '네'가 다른 예비도 없이 당당히 떠나겠다고 선언을 하니 이 얼마나 멋지고 신선한, 아니 부러운 일이런가.     



그렇게 떠나고서 책을 쓴 사람들이 말한다.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당장 모든 걸 잃을 것 같고 내 자존이 무너질 것 같아도 조금의 상실감과 약간의 두려움이 있을 뿐 크게 변하는 건 없다는 바를. 계륵 같은 안정을 버렸지만 한편으론 더 나은 기회를 얻게 된 '나'를 새로이 발견했다는 게다. 꼭 직장의 경우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탈피하고 싶은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흔들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최선을 다하되 바라지는 말라     



늘 불안과 걱정을 끼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심리적 처방이 필요한 법이니 첫째가 바로 '마음의 평정'이다. 에픽테토스가 쓴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메이트북스)는 이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권한'이라는 말을 끌어들인다. 세상사 가운데는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이 있고 속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내 권한 밖에 있는 것을 바랄 때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거나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내 소관에 속하지 않는 이러한 것들을 탐하고 좇느라 내 소관에 속하는 것들을 놓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내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들도 정작 놓쳐버릴 수 있다.(위의 책, 20p)     



육신, 재산, 명예 등이 내 권한 밖의 것들인데 보통 이걸 취하기 위해 가지는 감정의 부침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따라서 내 권한 안과 밖의 것을 잘 구분하는 지혜가 있으면 그 누구로부터의 강요나 원망, 비난과 억지도 불필요해진다고 본다. 최선을 다하되 바라지는 말라는 뜻이다.     

에픽테토스는 2,000년 전의 로마 철학자로 스토아학파를 대표하고 있다. 이 같은 마음 다스리기 철학은 시중에 나와 있는 힐링 책들의 사상적 근간이 되고 있으며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속도를 좇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격차 사회에서 상실을 경험하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참 따뜻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힐링이 허무한 까닭     



그러나 마음 치유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통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변론>에서 무지를 깨닫고 영혼에서 울리는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게 현자의 태도라고 보았다. 이 양심이 지키려는 정수가 곧 진선미다. 소크라테스는 이 가치를 위해 끝까지 정진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본인도 그렇게 죽었다. 즉 동요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순한 치유와는 달리 진선미를 따라 살려는 영혼의 치열한 지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원의 회복 없는 겉핥기식의 힐링이 허무한 까닭이다.     





이처럼 힐링에 관한 한 에픽테토스와 소크라테스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바꾸고자 나선 사람에게는 이 두 철학자의 가르침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연의 피로를 녹여내어야 내면에서 빛나는 진리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피로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힐링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고 또 그것을 추구하려 하지만 정작 힐링의 입구와 출구가 어디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지 않은지.      



힐링을 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다면 나의 힐링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차분히 돌아볼 일이다. 무엇보다 힘의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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