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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an 04. 2024

방문 노동자의 하루(1화)

일단 버티기

 “띵동”

공동현관문이 열리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가라앉은 마음과 텐션을 끌어올려본다. 외투주머니에서 얼마 전 구입한 연핑크 립스틱을 꺼내  바르며 입술을 맞닿았다 떼고는 생글거려 보기도 한다.  

 ‘오늘도 나오기 싫다.’

 폐기하지 못한 속 마음은 책과 물병, 필통이 든 가방 안으로 함께 밀어  넣자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린다. 목적지 도착이다.

 다시 “띵동”

  “선생님 어서 오세요.”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시는 어머니들과 달리 어린 꼬마들은 책상밑에서 선생을 깜짝 놀라게 해 줄 마음으로 숨죽인다.

" 얼른 나와!" 엄마가 소리친다.

 “헬로 유진! Have a seat. How are you today? How’s weather? Is it sunny?  

 “ 하이 티쳐!  I’m happy. Yes, it’s sunny.     

 하루에 네 다섯 차례 반복되는 상황. 방문노동자의 업무 시작을 알리는 효과음이다. 오늘은 유진, 선우, 하준이네를 방문했다.

아이방에 들어가 어머니께서 미리 꺼내 두신 책상을 마주 보고 앉는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서  방 안을 휘 둘러보면 자연스레 교육에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지 혹은 어머니의 인테리어 감각이나 성격까지도 엿보이는 일이라 숨어보는 마음이 들어 괜스레 불편하다.   또래보다 더 성숙하고 차분한 선우를  볼 때마다 차분하고 얌전한 어머니가 떠오르 듯 어머니들의 모습과  어린 자녀들의  이미지는 대체로 겹쳐 보인다.  몇 주, 몇 달을 수업하면서 방문 교사만의 오감을 끌어와 꾸준한 학습 상담과 일정을 조율한다. 말씀은 많지 않지만  단호함이 묻어나는 어머니가 학습에 대한 관심도 매우 많은 분이라면 더욱 조심하고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시간약속을 분 단위로 지키며 일하다 보니  어쩌다 5분이라도 늦어지면  교사의 자질 이야기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고  주변인들과 시간 약속에 대해서도 예민해졌다. 뒷 수업에 혹여 늦을까 수업 후 짧은 상담만 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집안일이나 아이 행사까지 작은 일도 스스럼없이 먼저 말씀해 주고 편안한 성격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시간에 늦게 되거나 갑자기 아플 때에도 유연하게  배려를 부탁하기가 수월하다.

 “선생님 저 쉬 마려워요.”

 “저 똥 마려워요.”

 “물 먹고 싶어요.”

‘응...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속에선 이런 말이 올라오지만 입을 통과하지 못한다.

“얼른 다녀와.”

아이가 무안하지 않도록 찡긋 웃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 아직 초등 입학 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다니는 5세 전후의 친구들은 수업에서 대다수가 이렇다.  평균 40분 영어 수업에서 그 시간동안 교사 혼자 길길이 날뛰어도 아이들 반응이 없으면 의욕이 한 풀 꺾인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타고난 머리와 언어적 재능이 항상 크게 작용한다고 믿지만

 “어머니 복습이 중요한 거 아시죠? 단기 기억 속에 있는 걸 장기 기억으로 넣으려면 복습이 필수예요.” 현관을 나서면서 가방 속에 준비해 간 것을 슬쩍 내민다.

 “어머니 이거...”

 “아이고 이게 뭐예요. 선생님?”

 “ 어머니, 별 거 아니에요. 요즘 날이 차서요. 털실내화예요. 그리고 우리 선우처럼 수업 잘하는 친구 소개도 부탁드려요.”

 “네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제가 직장 모라  아는 엄마들이 없어서요.”

겸연쩍게 웃음으로 대답을 주신다.

 ‘이 집은 아닌가 보다. 개인주의가 주는 폐해인가, 소개를 시켜주기 싫다는 걸까?’

신발을 신으며 영어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얼마 전 회사 회의에서 지점장이 한 말이다.

“우리 선생님들! 요즘 출산율이 떨어지는데  앞으로 유아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망해가고 있나요? 천만예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고모, 이모... 포켓이  여섯 개예요. 아이 하나 공부시킨다고 여섯 명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니 우리의 수업은  고품격의 질 좋은 놀이수업 즉 프리미엄수업을 지향합니다.”

귀가 따갑게 듣고 있는 말이다.

“누가 몰라. 아이들 친구 소개가 그리 쉬운 줄 아나 봐.”

"지금도 노래부르랴, 게임해주랴 힘들어 죽겠구만 유아수업 너무 힘들지 않아요?" 뒷 줄에 앉은 샘들이 작게 소근 댄다. 난 지점장의 이야기가 길어지기에  휴대폰을 책 밑에 깔고 내가 좋아하는 유투브를 음소거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리는 시간이 싫지않다.  또 다른 아이 수업으로 이동하며 화장실은 다음에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옷매무새를 고쳐본다.

‘ 과연 얼마나 나도 이 세게에서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이러려고 영어를 전공한 걸까.’ 해방감이라는 단어가 자꾸 몽글몽글 날아서 손에 잡히지 않게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가방은 이상하게 더 무겁고,  눈밑은 벌써 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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