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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an 11. 2024

방문노동자의 하루(3화)

오늘의 쉴 이유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온갖 훼방꾼들이 머릿속에서 출몰하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다. 마음은 늘 고정되어 있는 닻과는 다른지 분명 아침까지는 기분도 멀쩡, 몸도 멀쩡 이상이 없었는데 출근이 한 시간 뒤로 다가오면 마음도 몸도 변한다. 그야말로‘변신’이다. 그중에서도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며칠 전  사붓사붓 눈이 쌓이는 날, 눈이 오고 있음을, 코를 발름거리는 걸로도 뭔가를 찾아내는 강아지들처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날은 온기 가득한 이불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들고 드러누워 종일 뒹굴 된다. 그럴 땐 가족 중 누군가 안 가! 하고 호통을 치면 마지못해 일어난다. 눈 오는 날 눈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부러진 선생님 얘기, 운전하다 위험하게 바퀴가 돌아 수업 못 간  얘기들이 저절로 떠올라 ‘맞아 맞아 눈 오는 날은 운전하기도, 걸어 다니기도  위험해’ 하며 수업을 미루기도 한다.  세찬 빗줄기가  쏴 아하 쏟아지는 날은 오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고 싶어 진다. 보다가 끊어지면 집 식구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고 그러면 영화 보는 맛이 사라지는 것이 싫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 돌아다니면 우산을 자주 두고 오는 경우도 많아 민폐가 되고, 비에  젖은 겉옷을 입고 타인의 집에 들어가기도 꺼려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나름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낸다.


 오후 4시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나가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 한  그저 그런 날. 도래할 카드 청구서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주섬주섬 코트를 걸치고, 신발을 구겨 신는다. 출근길엔 비슷한 크기와 무채색 건물을 연이어 마주하며 시작된다.  그 건물들과  도로, 횡단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우울하다. 내일은 쉴 이유를 찾아야지.  하원하는 꼬마들과 그 아이 곁에 서있는 어머니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수업할 아이들도 지금쯤 집에 도착했겠구나 생각한다. 첫 수업집으로 가는 동안 갑자기 아이가 아파서 오늘 수업이 어렵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환절기엔 이런 변수가 많다. 일터에서 처음 만나는 고객은 아이들이라 그들의 표정을 읽는 게 중요하다. 그날의 아이들 표정이 내 기분까지 좌우한다.  내가 자신의 방안에 발을 들여놓자 한숨을 내쉬는 초등아이들이  꼭 있다. 영어 받아쓰기를 해야 하는데 복습이 잘 안 된 경우가 그렇다. 나는 매를 들지 않는데도 그렇다. 못 올 곳에 왔나 싶어 무안해진다. 무정한 일터다. 하지만 착한 일 한 것도 없는 데 이런 축복을 받아도 되나 하는 날도 있다.  얼마 전 일층 공동현관에서 가고자 하는 집의 벨을 누르고 10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다섯 살   핑크 드레스를 입은 쌍둥이 여아들이 선생님 하면서 막 달려와 안긴다.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도 안 된 아이들과 아직 친해지지도 않아  좀 서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큰 환호에 나는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 순수한 아이들 덕분에 남은 하루를 기쁘게 견뎌냈다. 매일매일 이런 티키타카는 일어나고 나는 이 일터가 싫기도 좋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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