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Jan 18. 2024

방문노동자의 하루(4화)

나를 일으키는 샘들

 교육회사에서  방문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나, 일주일 한 번 출근으로  만나는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무지개색이 떠오른다. 깔별로 다르지만 모여있으면  색이 더욱  화려해지는


 타고난 건지 아니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커진 건지 목청이 크고 호탕한 A샘은 출근길 문을 열자 우렁찬 아침인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이 그녀의 귀를  통과하면  본인 일이든 다른 샘들이 겪은 억울한 일이라면 얌전히 듣고만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그녀의 입은 거친 말들이 쏟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B샘은 조선시대 미인형으로 한복이 잘 어울릴것 같다. 단아한 차림의 복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교육하는 사람답다는 느낌을 준다. 그녀는 지금 직장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데  오랜 직장생활에 갱년기가 더해져 몸도 마음도 힘들다며 언제 이일을 그만둘까 하면서도 국민연금 나올 때까지는 다닐 거라며 미간을 좁히며 말한다. C샘은 십여 년 전에 이혼하고 고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산다고, 본인이 가장이라 돈을 더 벌어야 한다며 전투적으로 어머니들에게 아이들 소개를 권유하며 수업을 키워간다.  새로 생긴 남자친구로부터 커플링을 받았다며 반짝이는 손가락을 가볍게 허공에 흔들며 자신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을 촤라락 넘겨 보일 때면 천생 여자구나, 혼자라 외롭구나 싶다. D샘은 남편이 공무원이랬다.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 아닌데, 아이들 키우고 집에 있다 보니 이상하게 몸이 아프단다. 그녀는 많은 돈이 아니라도 집에 있는 거보다는 직장에 나오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건강을 위해 더 낫다고 남편이 등 떠밀어 나왔단다. 싱글인 E샘, 올해  쉰을 넘겼지만  매번 답변엔 속삭이며 수줍음을 보이는 소녀 같은 모습이 있다. 다른 사람과의 큰 유대감을 원하는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관심을 받으면 서운해 삐칠게 분명하다. 혹여 싱글이라 옅은 무시라도 보이면 왕하고 물 거 같은 강함은 분명 내재하고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여성들만이 가진 강점, 뛰어난 센스라 할 수 있는 오감의 레이더를 상대방에게 맞춰 다정함이라는 화학물질을 뿌려댄다. 우리는 점차 그 물질로 인해 감각이 둔해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이 물질은 너무나 강력하고 서로를 마비시키지만, 이 다정함이라는 게 없다면 직장생활은 지옥행일 게 분명하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도 내게 유일하게 다정한 생명체라 그에게 매일 사랑을 고백한다.  우리 팀원들 나이의 평균값은 50. 꺾어진 나이 쉰. 우리 같은 여성들은 경제생활은  계속 지금처럼 해나가고 싶지만 자신 있게 이력서를 낼 곳이 없다고 말하고, 어디 가서 설거지를 할래도 힘없다고 안 시켜준다고, 급여가  적지만 여기 다녀야겠다는 말도 무람 없이한다. 나를  일터로 이끄는힘, 나약한 정신을 일으켜 세워줄 힘이  투철한 직업의식도 아니고, 월급은 더더욱이 아니다.  품위도,고귀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사람들과의 동지의식 뿐이라 일할  의지가 푹하고 꺾이지만, 그런데도 그들이   내 옆에 없다면 일할 내 의지는 더더욱  푹 꺾일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전 03화 방문노동자의 하루(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