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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an 20. 2024

당도한, 혹은 당도하지 않은

일의 기쁨과 슬픔

 띠리리 현관문이 열리자 곧장 방으로 들어가 55킬로 여성에게 제법 큰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는다.  이 집의 두 남자 중 한 명은 주말에만 집에 오니 지금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있겠거니 , 다른 십 대 아들은 학원에 간 건지 안 보인다. 거실로 나가보니 긴 니은모양의 소파에 모로 누워 눈을 치떴다 감았다 하며 올려다보는 강아지. 전혀 경계심이 없고 편안한 모습이다. 그는 이 집의 상전이자 귀염담당인 러키.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벽에 붙은 전등패드를 누르자 사위가 밝아진다.  저녁 8시. 퇴근하면서 머릿속에 내내 떠오르는 생각. 이번달 카드값은 이렇게 또 해결했는데, 다음 달은 어떡하지? 수업 중간중간 차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 계산기 어플을 열고 수첩을 꺼내 다음 달 나갈 목록이 써진 페이지를 펼친다.  학습지 교사로 일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작은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점차 아이들 모집에 실패했다. 본인이 사업가인데 교사인척 하다가는 교육사업도 쉽지 않다는 걸 교훈으로 얻었다. 빚과 맞바꾼 교훈. 결국 3천만 원의 개인 사업자 대출을 계약서만 남기고 일을 접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사업장을 즉시 양도할 사람이 나타난 걸 보니 복이 있댔다.  시설비의 60프로를 제하고 넘겼다. 손해가 컸지만 복이 있다니 그런 것도 같았다. 다가올 월세를 생각하니 더더욱이.

 학습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3천만 원의 빚을 다달이 갚고 있다. 생활비까지는  부족해 남편의 월급날   충당을 한다.  이렇게 지난해를  넘기고 새해가 왔는데, 내 삶은 작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비슷한 수업과 수입. 수업과 수입은 곡 정비례하는 걸까. X는 학생 수 Y는 수업 시간. 학생 수가 적어도 수입은 증가하려면 시간당 수업료가 지금보다 훨씬 상승해야겟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이내 계산을 멈춘다.



 설거지를 먼저 해야 할지, 청소기를 돌려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 청소기를 집어든다. 학습지라는 일이 주로 저녁에 수업이 있다 보니.  늦은 시간 먹다 보면 살이 찔 수밖에 없는데, 오늘은 입맛이 없어 굶기로 한다. 아니 잘 먹어서 뭐 하나 삶이 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물과 비타민 세 알을 털어 넣고 물을 마신다. 건강 생각도 안 할 때와는 달리 가진 게 몸밖에 없는데 돈이 덜 들려면 건강은 미리 챙겨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다닌다.  이렇게 말과 생각이 불일치되는 건 나이 탓인가 아니면 원래 내 성격인가를 모르겠기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 재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의 풍성하고 쫙 뻗은 머리칼과 날씬한 모습. 재은은 복권을 샀다며 종이 여러 장을 힘차게 흔들며 마치 복권에 당첨된 듯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싱글벙글거렸다. 한 손에는  바닐라라떼 한 잔, 다른 손에는 복권을. 양손에 든 기쁨이 넘쳐 얼굴에 흘렀다. 부러웠다. 재은의  당도하지 않은 행복들이 당도한 것처럼. 그녀의 뇌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마구 분비하는  중이다. 평소 자신이 어떤 모습일지에 궁금해하기보다는 앞으로 올 수 있을 기쁨을  미리 낚아채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를  약간 기이하다고 어떤 날은 그냥 부럽다고 생각한다.


 청소기를 밀자 윙윙 거리는 소리가 집안을 깨우고, 우리 집 세 살 된 러키가 벌떡 일어난다. 러키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청소기 소리다. 아냐 괜찮아 소파에 있어라고 부드럽게 다독인다.  러키의 동그란 구슬 같은 눈망울을 보니 왈칵 눈물샘이 터졌다.  눈물이 날수록 힘차게  거실부터 안방복도까지 청소기를 밀고 다녔다.  거울에 비친 몰골을 보니 눈이 붉어져있었다. 누가 갑자기 오진 않겠지. 민망함이 몰려왔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원 갔다 왔다며 놀란 동그란 눈으로  무슨 일 있어? 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럼 어쩌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카드값 내고나면 남는게 없어 할수도 없고. 그런 고민도 잠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아이는 아마 눈도 안 마주치고 복도에서 바로 연결된 자기 방으로 휑하니 찬바람을 일으키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엄마가 운동회에 늦게 오는 날 엄마를 무척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집에서  한 시간은 걸어와야 하는 길, 집에는 자가용이 없었고, 유일한 이동수단인 경운기는 사람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쉬지 않고 덜컹댄다. 그걸 느린 속도로 타고 오실 거라,  일찍 출발해도 늦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어렸고, 그 시간이 두려웠다.

 엄마가 안 오면 나는 언니들과 누구네로 가서 밥을 먹어야 할지, 자존심이 상해서 눈을 팔자로 그리고, 입을 앙다물며,    결코 늦지도 않은 엄마를 생각하며 애를태웠다. 마음이 지쳐갈 무렵 엄마는 멀리서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양손에 무겁게 들고 내 이름을 부르며 등장한다. 나는 그제야 엄마를 발견하고는 좀 전까지의 성남과, 반가움 사이에서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며, 약간은 성난 눈을 하고는 후다닥 달려가서 엄마손에 든 걸 거들어 들었다.

그때도 그랬다. 쪼끄맷을때도. 당도하지 않은  걱정을 당겨서 하는.


 쉰이 다가온  지금 여태까지도 마치 나의 고유함이라도 되는 양  이런 내면을  껴안고 애를 태우며 산다. 나는 재은이 돼보기로 했다. 당도하지 않은 걱정 말고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내가 가질 기쁨을 헤아려보는.  월급으로 예쁜 원피스를 사고, 맛난 걸 실컷 사 먹고, 연로하신 엄마와 아들 용돈을 넉넉히 주고, 좀 더 먼 미래의 기쁨은 또 어떤가. 군대 갔다 유학 간다는 아들 뒷바라지에 들어갈 학비(그건 아깝지 않다.) 20만 킬로 넘게 탄 나의 중고차, 아들이 두세 살이었을 때 산 차를 새 차로  바꾸면 어떨까, 더 멀리 가닿은 미래엔 내가 마당에 잔디가 깔린, 잔디의 키는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정돈돼있다.   볕이 잘 드는 양지에 파라솔이 하나 펴있고 그 아래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내가 있다. 아파트가 아닌 150평 대지에 마당이 너른 집.  물론 그 집은 내 고향 어느 조용한 곳에 있고 텃밭은 없다 (텃밭도 하다 보면 무릎 망가지는 걸 엄마를 보니 알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현실이 너무 냉혹해서 자의식이 자꾸 흩어지려 한다. 앞으로 그 순서대로  당도할 기쁨인지 혹은 영영 오지 않을지, 어쩌면 그중에 무엇이 먼저 당도해 나를 놀라게 할지 모르지만 그 기쁨을 당겨 피로한 나를 해방시킨다. 뇌에서 도파민이 마구 쏟아진다  파바바박 전율이 느껴진다. 말초신경에서  다시  전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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