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현이 그리고 나
여느 직장인들과 달리 나의 업무는 주로 오후 4시 이후에 시작된다. 그 시간 전에 씻고, 필요한 걸 챙기고,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일터로 향한다. 일의 주요 고객인 유치원생 아이들, 소수의 초등학생 아이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어머니들이 우리 사이에 있다. 우리 셋의 관계는 곧 내 보수로 이어지니, 관계를 잘 유지해 내가는 것이 영어를 가르치는 능력이상 중요하다.
구슬 같은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 연이라는 아이가 있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작년 지난 일곱 살은 한글 떼기라는 큰 과업을 성실히 해냈다. 엄마가 사주셨다며 새 연필을 내보이며 자신의 손바닥 보다 작은 투명 수첩을 꺼낸다.
" 선생님 저 뭐 써줄게요. 보지 마세요. "
"알았어. 안 볼게."
그 아이를 안심시켜도 걱정이 되는지 엎드려 팔로 수첩을 가리자 둥그렇게 말린 팔의 원 안에서 길쭉한 연필이 둥근 머리만 보인채 왔다 갔다 한다. 선우라는 다섯 살 아이는 비즈로 만들 알록달록한 열쇠고리를 쓱 내밀었다. 열쇠고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마음은 좋다. 이렇게 막 받아도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작은 체구와 밝은 웃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해 낸다. 어떻게 이런 막막한 세상에서도 나를 지키며 살 수 있는지를. 나는 가르치러 왔는데 오히려 배우고 간다.
연이는 작년부터 영어 알파벳과 음가를 익히고 있지만 단모음+단자음부터 막히는 걸 보니 교사인 나도 답답하다. 워킹맘인 어머니도 바쁘고 복습은 자주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연이 상황을 누구보다 모를 리 없는 어머니는 조바심 내지 않고 아이 속도에 맞춰서 수업해 주라는 말에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현이라는 남자아이도 올해 여덟 살, 현이도 연이와 비슷하게 영어 쓰기가 더딘 편이다.
지난 눈이 온 날이었다. 그 아이의 수업이 있던 시간, 그 집의 현관문을 넘으며 인사를 하는데 어머니의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나를 환영하는 듯 웃고 있지만, 냉담한 눈빛...
수업 중의 일이었다.
받아쓰기를 하는 중에 현이가 단어 조합이 잘 안 되는지 머리를 긁적긁적 말없이 느리게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 받아쓰기 중이에요.”라고 말하며 아이도 나도 놀란 눈빛을 보냈지만 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문을 조용히 닫았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에 땀이 나면서 점차 귀와 얼굴이 붉어졌다.
뭔가 다른 핑계로 조심스레 문을 열 수는 없었을까? 무슨 일 인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업이 마무리된 후
“ 선생님, 현이가 파닉스가 너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2 주 전부터 주 3회 어학원을 등록했어요.”
...
“... 네... 그러셨군요...”
몇 년 수업을 했는데 파닉스가 너무 안 되는 거 같아서요. 라며 붉어진 내 얼굴이 마음에 쓰였는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머니의 붉고, 긴 손톱이 작게 탁탁 책상을 두드리는데 그 진동은 점차 커지며 나를 강타했다. 저 손으로 내 얼굴을 할퀴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잠시,
“어머니, 일 년 넘게 한 건 놀이수업이었고 파닉스는 작년 일 년 정도 했는데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복습 부탁드린다고....
작게 내뱉은 목소리는 허공에서 부서지고 모든 게 교사 책임이 되는 순간이다. 평소 수업에 관해 문자로 소통했는데, 웃는 이모티콘에 감사하다는 표현도 잊지 않고 해 주셨는데, 하지만 그날 그녀의 눈은 어쩐지 태풍의 눈을 닮아있었다. 조용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매서운 한 방.
첫 영어 교사를 만나게 되는 나이 네다섯 살, 그즈음에 ”선생님, 저희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지는 않고 재밌게만 했으면 좋겠어요. 호호호. " 어머니들의 그런 말에 홀리듯 전적으로 믿는다. 그렇게 믿고 있다가는 종국에 얼굴을 붉히게 되는 일이 생긴다.
“ 어머니, 우리 영이 맡겨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파닉스는 언제쯤 생각하시고 계실까요?
어머니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성질 급한 교사취급을 한다.
’ 아니요, 아직은 우리 영이가 영어를 놀이로 재밌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은 전부예요. ”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어머니의 그 마음이 부디 그 마음 변치 않으시길...
나의 어린 시절과 매우 다른 삶은 사는 우리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며 성장하는 게 좋은데 시간이 없는 아이들, 모국어도 아직 못 쓰는 나이에, 영어까지 하느라 고생 많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어른인 우리가, 사회가 져야 하는데, 그 일에 종사하며 밥벌이를 하는 나의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