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경선(1화)

한국에서 재취업

by 김작가


엘리베이터 안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경선은 연신 얼굴 이쪽저쪽으로 손부채질을 해댄다. 갱년기는 지났다 생각했는데도 긴장하면 등과 목덜미에서 후끈거리며 땀이 났다가는 차갑게 식고, 이내 그녀의 마음도 스산해졌다. 6층에 내려 <으뜸교육> 간판이 적힌 곳 앞에서 멈춰선다. 경선은 불투명시트지로 둘러싸인 사무실 문을 흘깃거리다 애초에 아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더 가리고 싶은 듯 흰 마스크의 면적을 넓게 다시 고쳐 썼다, 이미 낯선 모국에서 일을 시작하겠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지, 미국에서 했던 청소나 관리일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본능적으로 생각했지만, 가끔은 이성이 이기는 결과를 맞기도 한다. 문을 빼꼼히 열자 눈앞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책상들과 의자, 이동식 칠판등이 일렬로 펼쳐진다. 다단계판매회사에라도 발을 들인 듯 그녀는 흠칫 놀라며 들여놓은 얼굴과 달리 몸이 얼른 따라 들어오지 못해 그만 문을 쿵, 하고 발로 치고 만다. 문 안 반대편에서 기척을 들은 한 여자가 경선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오셨어요?"


12월 내린 서리처럼 놀랄 것도 없다는 듯한 무심한 투로 말을 건네는 여자는 점점이 박힌 주근깨가 유난히 흰 얼굴에 도드라져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자주 보던 여자들이 그랬다, 밀가루칠을 한 듯한 흰 팔뚝에 옅은 주근깨들이 작고 큰 그림들을 수놓아져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무심한 사람들 말이다. 처음엔 왜 피부과에 안 가나 싶기도 해 경선은 의아하기도 했지만 LA의 날씨에 익숙해지니 피부에 오르는 기미는 삶의 방증인듯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안녕하세요, 각기 다른 억양으로 되뇌었음에도 목구멍 밖으로 나온 건 거친 호흡과 거친 헬로, 였다. 멀리서 조경선 씨! 이름이 재차 확인하고는 손끝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 끝 방으로 가리킨다.


경선이 며칠 전 근처 백화점에 들러 거금을 들여 새로 산 구두, 알알이 촘촘히 수놓듯 박힌 보석이 길게 사선으로 발등을 가로질러 뭉툭한 발등을 날씬하게, 세련되게 보여주었고, 미국에서 보던 구두와는 섬세함이 달라 역시 한국구두가 예쁘다며 그것을 신어보고는 쏙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러나 당장은 그것을 고른 실수를 여실히 깨닫는 현실,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아파오는 통증을 참아내느라 걸음이 절뚝인다. 안 그런 척하려 할수록 더욱 부자연스럽다. 이런 중요한 날일수록 새 구두는 마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한다, 영어강사라는 일자리는 역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갈등이 목을 조여온다. 당장 나간다해도 누구돈 관심 갖지 않을 분위기였다. 딱딱딱, 둔탁한 소리가 연기처럼 복도에 가득 차오르자 자신의 심장도 쿵쿵쿵, 무심히 닫힌 문고리를 향해 다가가면서 후회라는 발자국을 찍어댔다.


"선생님, 요즘 젊은 어머니들이 참 쉽지는 않아요. MZ 세대 어머니들은 자기표현이 분명하다고 보시면 돼요. 수업에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절대 참지 않고 회사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고객센터로 바로 전화해 자신의 불편을 접수하신다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교육서비스가 중요하지요."


짧은 커트머리에 로즈골드 안경테를 쓰고는 삼선슬리퍼를 신은 그녀, 아마 구두는 책상 밑 구석에 처박혀있다고 필요시 등장할 것이다. 건조하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말투를 연출한 그 지점장을 보고 있자니 교육회사에서 오래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아 승진했을 그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긴장한 경선에게 차를 한 잔 내주고는 준비한 종이와 볼펜을 들고는 묻는다. 왜 한국에 왔는지, 50대 중반에 취업하려는 이유에 대해, 미국에서의 삶에 대해. 흥미와 의심을 담은 질문을 쏟아냈다. 경선은 한국에 들어오자고 마음먹은 후 줄곧 일자리를 탐색했다. 아는 동생이 추천한 영어 학원 쪽을 알아보다가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자신에게 맞을 것 같아 영어방문교육회사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차분히 답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면접에서 실패하면 안 되겠다는 불안한 마음에 결혼하기 전 은행에서 근무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고객들을 응대할 때 자신의 성실과 전문성으로 은행 내 실적이 좋았다고 다소 격양되게 쏟아냈다. 또한 자신도 육아를 해봤기 때문에 학부모들과의 소통은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자신을 포장하면 말했다. 경선은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잘 안다.


삼 일이 지나도록 회사에서는 연락이 없어 면접에 최종 탈락했다고 생각하던 날 새로 산 구두를 반품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던 날에 <으뜸교육> 여자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3일간 본사교육에 다녀오라고했다. 이후 지점장과의 전화통화에서 경선이 선택되기까지 지점장은 고민이 많았다고, 오히려 세상 경험이 많고 영어도 잘하시니 한 번 믿어보고 싶다고 더 열심히 해줄 거라 믿는다고 일축하며 끊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것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어쩌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 한채 경선은 작은 원룸 현관에 구두를 나란히 놓고는 한참을 바라보자 이런 날 딸이랑 와인 한잔 기울이면 좋을 텐데, 눈앞에 맺힌 눈물 때문인지 구두의 보석이 유독 반짝거리며 경선을 위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