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가 필요한 경선(2화)

모순

by 김작가

LA에 도착했던 1월의 날씨가 한국과는 달라서 그저 좋았다. 딸이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엄마 우리 비행기 타는 거야?, 신난다."


감기와 비염을 달고 있던 딸이 외풍 심한 집을 떠나는 게 경선은 싫지만은 않았다.

교회 청년부에서 치수를 만났고, 그 무렵 경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지역은행에 취직을 했다. 결혼 후 치수는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를 못했다. 어느 날 비장한 표정으로 신학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어디로 가자고? 미국?"


일찍이 이민 간 사촌 형의 보증으로 미국에서 학교와 거처를 알아봐 주었다. 미국 내에서도 기후가 좋은 캘리포니아 주는 많은 유색인종들로 붐볐고 작은 아파트 월세가 이천불이 넘는 집세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해 처음엔 사촌형 부부의 도움을 받기 일쑤였다. 정착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조화롭게 융화되며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그런 편이 아니라고 내내 생각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모래 위에 성을 쌓는 듯 쌓기가 무섭게 돈은 자주 허물어져 바닥을 보였다. 불안한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신과 치수의 신앙의 힘으로 헤쳐나가리가 경선을 늘 두 손을 모았다.


치수는 졸업 후 아는 신도의 집 차고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부부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을 주로 돌아다니며 개척교회 전단지를 돌렸다. 치수의 목회가 잘 될 수 있다면 체면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상황을 잘 아는 몇 명의 성도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목회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치수는 어느 자매의 아이가 아플 때 방문해 기도를 해주었고, 아는 형제의 이사, 버거운 집안일들도 앞장서 도왔다. 한인사회에서 도움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예배당 내 작은 헌금함이 늘 자신을 노려보는 듯했고, 그들의 봉사의 대가는 크거나 적은 금액으로 반드시 되돌아왔다. 경선은 치수의 삶을 존중했다. 하느님의 종으로 일하는 삶이 숭고한 일인 걸 알았다. 치수가 올리는 기도는 늘 화려하고, 하늘에 닿을 듯 컸다. 하지만 막상 그가 몸으로 하는 노동은 참아내지 못했다. 미국에 먼저 이민 온 한 교회 형제가 경선을 통해 소개한 세차장 일을 받았을 때 치수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불편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 세차장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고 결국 삼일 만에 몸살로 일을 그만두고는 더 열심히 목회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신앙이 노동의 부피와 통증을 줄여주지 못했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새벽 5시, 오랜 경선의 습관으로 예배당이 있는 차고로 발길을 돌렸다. 그 무렵 신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보고도 믿지 못한 경선은어둠 속에 자신의 눈을 문질렀다. 꿈이면 깨어나기를.


"여, 여보, 불이야! 모, 목사님!"


이상하게 목소리가 막혀 어떤 음성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나온 경선은 허공에 춤을 추는 듯한 불꽃과 가루로 변한 재들이 뒤엉커 날리며 마치 화산이 분출한 듯 예배당은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다. 경선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안....돼

경선은 뜨겁고 이후 차갑게 식은 예배당을 보며 처음으로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한동안 치수는 말이 없었지만 이내 경선의 신앙을 탓했다. 시험 없는 신앙을 어떻게 증명하겠냐고. 그는 경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경선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가서 뭘 해? 우리가 간다고 형님이 반겨 주실까? 지난번 형님 수술 할 때도 가지도 못하고 돈만 조금 부쳐드렸는데......"


"아잇, 그때는 코로나 때문에 우리만 발이 묶인 게 아닌데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해요."


치수는 경선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떨어져 있으면 남보다 못하게 되는 게 형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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