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의 행방

밥벌이의 지루함이란...

by 김작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가방 안에서 A2 크기의 비닐봉지를 꺼낸다. 영어교육회사 전단지를 네모나게 반듯하게 접어 한 눈에도 잘 보이는 투명 비닐봉지에 넣는다. 수업하는 집을 오가며 눈에 띄는 곳에 하나라도 붙여둔다. 늘 가방 안에는 전단지 몇 장은 수업에 필요한 물병과 문구류와 함께 들어있다. 나의 행동이 꽤 자연스러운 데는 이유가 있다. 영어학원이 동네에 무수히 생겨난다. 물론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교육회사에서도 홍보에 혈안이 되어 홍보하라는 소리를 매주 듣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행동이 나온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어김없이 붙여놓았던 전단지의 행방을 한눈에 찾아본다.

어맛, 없잖아!, 누가 떼간 거야?

전단지가 바닥에 내팽개쳐있다. 더러 있는 일이라 놀라지 않는데 그것을 다시 수거하는 마음이란 귀찮다, 애사심에서 우러나오는 속상함은 아니라 몸을 놀려야 하는 귀찮음이다. 물론 욕을 하며 전단지를 떼시는 청소아주머니들도 귀찮기는 마찬가지일 테다. 애사심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런 마음은 분명 존재했었다. 입사할 때 싹이 텄다가 얼마가지 못해 죽어버렸다. 부족한 영양분 탓이다. 이따위 전단지 붙이고 수거하는 일쯤이야, 하고 넘기면, 재미있는 일을 보게 된다. 마치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전단지와 동봉했던 딸기맛 마이* 3개만 사라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마이*는 분명 아이와 함께 탄 어머니의 손에 털려 아이에게 전해져 입으로 쏙 들어갔을 것이다. 이쁜이들 입에 들어간 게 잘 못된 일일 리 없다. 단지 전단지도 같이 가져가주지 않은 센스 없는 엄마 탓이다.


365일 중 주말조차도 밥벌이를 하는 이들도 있고 그게 살아가는 일상의 순환이다. 순환이라는 순한 표현을 빌렸지만 결국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점점 끓어오르는 지긋지긋함을 내포하고 있다. 신은 새와 풀 등 자연에게는 값없이 입힌다 했지만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아닌 터라 직장인이든 사업주들이건 아마도 밥벌이의 지루함은 보편적인 감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보편적 감정 안을 들여다보면 극도의 개별성이 자리 잡는다. 다 같이 지루함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인한 타격감을 결국 개인차가 큰 법이다. 누군가는 정년을 채우고, 누군가는 사직서를 내고, 누군가는 공황을 얻는다.

밥벌이라는 루틴은 일하는 자들에게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가령 내 나이 곧 반백살이 가까워지니 체력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매주 두세 번 요가를 나간다. 근력과 유연성 부족의 이유로 모든 아사나(자세)는 쉽지 않디. 삶이 쉽게 허용해 주는 게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일을 하려면 심신단련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노동의 대가에 감히 못 미친다고 피를 토하고 싶은 금액을 매달 수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 달은 쉰다고 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카드값을 대신 내줄 이는 없다, 그런 고로 영양제와 커피 한 잔은 밥벌이의 신성한 매뉴얼의 일부다. 문제는 죽는 날까지 무한 반복, 즉 순환의 루틴이 깨지면 어떠한 일상을 마주해야 하는지 감당이 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에 이 지루함을 견디고 있다. 돈 없이 고상하게 잘난 척하며 살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지루함 속에서 돈의 소중함과 존중을 표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내밀 사표를 지긋이 눌러둔 오늘, 무사한 이 하루하루의 순환이 늙어 죽을 때까지 순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밥을 먹는 일이 단순히 쌀을 삶아 먹는 일 이상의 지엄한 일로 귀결되어야 마땅하듯이 또한 일 할 수 있는 오늘이 누군가의 기적 같은 하루였을지를 생각해 본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자명한 삶에서 숭고한 이유까지는 아니어도 지루함이 앞서 지 않을 이유 한 두 가지라도 찾아 나서 봄이 우리의 사명과도 같지 아니한가 생각해본다.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보이는게 다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