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를 정하기까지
영어 방문 수업일을 시작한 지 4년이 넘어가면서 몇 달 전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사직서를 지점장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이런 일이 놀랍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심하게 말한다.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수업 뺄 수 있을까요?
나도 무심한 채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지난 6개월은 날마다 그만둔다와 계속하자의 반복되고 지루한 일련의 나날을 거듭해 왔다.
1월까지 가능할까요?
글쎄 신학기라 선생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긴 한데, 면접은 계속 보고 있으니 기다려보세요.
입사할 때는 나를 입에 사탕처럼 달콤하게 부르더니 그만둔다니 그 뒤로는 본체만체 시큰둥 그 자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 역시 내 수업을 넘겨줄 사람만 찾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력시장은 요즘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특히 대도시에서도 한 참 벗어난 외곽의 소도시라 원하는 시기에 지원자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방문수업 기피할 만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제때 선생을 찾아 넘겨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 무얼 기대하고 한 말이었을까. 선과 악이 치열하게 내면에서 싸우듯 뇌리를 점령한 건 할 수 있는 일과 일과 해보고 싶은 일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렇다 보니 현재 일에도 오롯이 집중도 못했던 거 같다. 해보고 싶었던 일은 작은 교습소 오픈,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그대로 일 지속, 이 두 가지를 놓고 어느 날은 그래 ‘그래 결심했어, 1월까지만 하고 나가는 거야, 어차피 돈도 안 되고, 더 늦기 전에 내 일을 시작해야지’ 자신을 어리석다 탓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는 이렇게 익숙한 일을 버리고 나가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할 텐데, 하며 또 고개를 흔들곤 했다.
수업시간에 영어동화책을 읽어주고, I love to~ 로 문장을 만들어 본다. 다섯 살 지원이가 I love to dance.라고 말하면서 발레리나 그림을 보고는 한 마리 홍학처럼 한 다리로 서서 두 팔을 둥그렇게 감싸더니 빙그르르 어설프게 돌며 발레리나 흉내를 낸다. 그러고는 I love to cook. 문장을 표현해 달라고 요청하자 난 도마에 칼로 야채를 써는 모습으로 탁탁탁, 지원이는 큰 국자로 냄비 안을 휘젓는다. 사랑스럽게 귀여운 얼굴에 하초핑 드레스를 입고 역할극 하듯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일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여기 일터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어린이들을 만나는 거잖아, 그렇지?
고민이 많은 걸 아는 10년 차 동료샘이 어느 날 털털한 웃음과 함께 내게 운을 뗐다.
샘, 고민을 하다 보면 정신 건강에 안 좋아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이 일을 할 때의 장점에 집중하는 게 좋아요.
자신을 객관화해 보니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 일을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 리스트를 써보니 몇 가지가 명확해졌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자 했던 것이 수입은 아니었다. 시간적 자유다. 글을 읽고 글을 쓸 시간, 하루에 3번 실외배변을 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외부로 나가야 할 시간, 그것을 차치하고 돈이 적다고 탓만 해왔다. 돈이면 모든것이 해결될까?
보이는것은 실체와 다를 수 있다는것을 간과했다, 실체를 보지 못하고 테두리만 보면서 감탄해왔다. 남의 것이 그저 좋아보였던 것은 아닌지.....
이번 달로 마지막 수업을 한 어머니가 선물을, 아이가 편지를 써 건네받아 돌아오는 길에 코 끝이 찡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