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다정함
3월 첫 주에 우연히 당근마켓을 뒤지는 중 동네홍보 코너에서 작은 꽃집의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오픈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꽃집, 꽃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없다는 사실을 그 집을 두어 차례 방문 한 후 알게 되었다. 자주 꽃시장에 가서 꽃을 사 와서 신선한 꽃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그야말로 주인장의 마음이 꽃 같은 곳이다. 꽃집 사장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꽃들을 예쁘게 포장하고 각각의 꽃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덧붙여 가게홍보란에 올리면 나 같은 나그네들이 지나치지 못하고 이야기를 읽고 또 꽃집에 들르게 되리라는 홍보전략(?)이 내게는 통했다.
3월에 네 번, 각기 다른 이유로 꽃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가게 홍보를 읽은 당일이자 3월 입학식이 한창이던 때, 나는 나를 위해 꽃을 샀다, 나의 봄이 찬란하길 기원했다. 봄맞이로 프리지어와 안개꽃을 다발로 만 이천 원에 구매했다. 두 번째는 수업하는 아이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 후 처음으로 그 집을 방문하러 가기 전에 꽃집에 들러 프리지어와 안개 다발을 작게 포장해 갔다. 나를 맞이하는 어머니가 육아와 이사의 분주함에서 조금이나 해방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해서였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고 하자 아이의 부모는 꽃 같이 밝았다, 그러고는 수업시간에 알이 굵은 딸기를 내어줘 기분좋게 먹었다. 세 번째 방문은 3월 23일이었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남편과 함께 들렀다. 남편은 이만 오천 원어치의 프리지어, 핑크 장미, 안개꽃을 단으로 묶어달라 요청했다. 한눈에 보아도 오만 원 이상되는 정도의 몸집을 자랑하는 다발이 완성되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큰 다발만큼 향기도 진하게 느껴졌다. 네 번째 방문 한 날은 이러했다. 수업을 가기 약 두 시간 전에 수업하는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 때 수업 전에 따로 통화는 하지 않고 문자로 방문을 알리고 상황이 안 될 경우에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 엄마의 전화에 긴장하며, 무슨 일일까? 살짝 두근 됐다. 선생님, 울음을 머금은 축축한 목소리에 놀란 나는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묻자, 우리 아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어요, 한다. 아리는 나이 든 작은 푸들 반려견이다. 말인 즉, 점심에 외출했다 돌아오니 아리가 입에 간식을 물고 죽었단다. 가족들에게 인사도 전하지 않고 갔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개도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죽기 이전엔 보통으로 곡기를 끊는다. 노견이라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리는 간식도 잘 받아먹는 터라 아직은 갈 때가 아니라 생각했단다. 선생님, 그래서 제가 정신이 없고 해서 오늘 수업은 못 할거 같아요. 한다. 아리가 좋았던 기억만 가져갈 것이다 라며 짧은 위로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내 가경 험하지 못한 슬픔에 대한 더 깊은 위로를 전할 방법을 몰랐다, 갑자기 꽃집이 생각났다. 꽃집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흰 꽃이 피는 화분을 사고 싶다고 했다. 여사장은 흰 화분이 당장은 마땅한 것이 하나밖에 없다고 미안해했다. '일일화'라는 흰꽃이 피는 화분이란다. 매일 피고 지는 꽃이라 '나날화'라고도 한다고 했다. 이런 꽃이 있나 신기하기도 했다. 수업은 다음으로 미룬채 반려견 아리 엄마의 집 문 앞에 화분과 카드를 두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녀의 큰 슬픔에 비해 작으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어 다행과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다정함이란 어떤 것일까? 다정함이란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살아남은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덩치가 크기도 작기도 했고, 일부는 무서운 사냥꾼이기도 하고 일부는 온순한 채집인이었는데요. 단순히 적자생존, 즉 힘이 세고, 최상의 먹이를 찾고, 매력적인 짝을 찾고 후손을 많이 낳아서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호모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번성하게 된 이유는 다정함과 협력이라고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에서> 브라이언 헤어, 바네사 우즈 지음
나는 우리 인류가 이런 다정함이라는 특징을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하지 않고 풍성하게 활용하고 유산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기존에 일터는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이 컸다,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에게 꽃을 선물하는 순간 더 이상 고객이 아닌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지식보다 관용과 이해의 몸짓이 필요한 시대이다. 꽃을 사보자, 나와 사랑하는 이웃에게 선물해 보자.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