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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May 15. 2024

[서평] 존재는 흔적의 집합체,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미

스벤 슈틸리히, 『존재의 박물관』



우리에게서 무언가는 틀림없이 남는다. 다만 그게 무엇일지 우리는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뿐이다. 인생이 우리를 기억하리라. 찾아갔던 곳, 만났던 사람, 우리가 살았던 세상을.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생은 계획할 수 없는 것, 카오스이자 생동감이 넘치는 흥미로운 것이다. (15p)



모든 존재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우리가 지나온 길 위에 새겨진 발자국처럼 가시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비가시적인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과 장소에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로 우리에게 흔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태어난 직후 지금까지 걸어온 일생은, 그리고 마침내 끝나버릴 인생은 우리 존재의 흔적이 모인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전달하는 '존재는 흔적의 집합체'라는 메시지를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라는 (나에게는) 진부한 교훈으로 정리하기는 무언가 좀 아쉽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과거의 모든 순간의 결과물이고, 우리의 미래 모습은 그런 지금(이자 과거)의 결과물일 것임은 이 책의 메시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내릴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흔적의 집합체'라는 메시지를 더 진전시켜 보자. 완성되고 있는 박물관 혹은 완성된 존재의 박물관은 그 존재가 마침내 무화된 순간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존재가 사라졌으니 존재의 박물관도 사라지는가? 존재에게 박물관을 완성해갈 망치를 쥐여준 것은 바로 '흔적'이다. 내 존재의 흔적은 이미 지나쳐 온 이상 그 순간부터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본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 말은 즉, 내가 죽어서 무화한다고 해서 내 존재의 흔적도 같이 무화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 나라는 존재자는 사라지더라도, 내 존재의 흔적과 박물관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 사라질 수도 있다. 이 아름답고 숭고한 존재의 박물관의 유무는 그렇다면 어떤 요소에 의해 정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남겨진 자들이다. 나라는 존재자는 사라지지만 나라는 존재는 남겨진 자들에 의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각자가 가진 수십억의 우주 아래에서 내 존재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겨진 자들이 바로 내 존재의 박물관의 소중한 방문객이자, 수호자이자, 후원자인 것이다. 내 일생이 아름답고 찬란해야 그들 역시 내 박물관에 애정을 계속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내 존재의 박물관에 그들이 계속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난 내 일생을 찬란한 무엇으로 만들어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으며, 내 존재의 모든 흔적이 될 '모든 지금'을 사랑하고자 한다.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의 박물관의 관객이자, 후원자이자, 수호자이고 싶다. 내가 그들의 일생을 응원하고 믿는 것의 기저에는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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