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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괴한 미(美) 앞에서, 생을 딛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by 책 읽는 호랭이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문학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다. 『우국』, 『가면의 고백』과 함께, 이 『금각사』를 통해 그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금각사』는 1950년 실제로 발생한 금각사 방화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그 사건을 미시마 나름의 철학과 미학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패전 후의 암울한 일본을 배경으로, 금각사의 젊은 승려가 된 미조구치가 금각을 불태우기까지의 짧고도 긴 내면의 여정이 펼쳐진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주인공이 금각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그 대상을 파괴하고 싶어 한다는 이중적인 심리다.


이 감정은 내게도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사랑하는 친구가 절망의 바닥을 겪어보길 바란 적이 있었다. 단순한 악의가 아닌, 그 절망을 딛고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가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기묘한 애정이었다.

미조구치가 금각을 향해 느낀 감정도 어쩌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단순한 파괴 충동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파괴된 뒤에도 자기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 또는 완전한 소멸 이후에도 여전히 잔상으로 남을 무언가를 향한 탐색이었을지 모른다.


말더듬이라는 선천적 장애, 사랑하고 동경했던 인물들의 죽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고립 속에서 미조구치는 결국 금각을 불태운다. 그리고 그 불길을 바라보며 중얼인다: “살아야지.” 이 독백은 단순한 생존의 다짐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전환하는 결정적인 순간, 즉 ‘극복’과 ‘재탄생’의 선언으로 읽힌다.


실제 사건에서는 방화범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반면, 미시마는 소설 속에서 미조구치가 마지막에 자살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방화의 행위를 하나의 시작점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선택은 이 작품을 단순한 모티브 재현이 아닌, 미시마의 미학적 해석이 담긴 철학적 사건으로 끌어올린다.


『금각사』는 단순히 따라가기 쉬운 서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 복잡함을 감싸고 있는 미시마의 문장은 놀라울 만큼 유려하고 정교하다. 이해 여부를 떠나, 그의 서사 감각은 어떤 미적 정당성으로 독자를 끝까지 설득하는 힘을 지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미와 동경의 대상이 붕괴되고 파괴된 이후에도, 나는 그 대상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증오는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하지만, 사랑은 파괴 이후의 흔적과 재탄생까지 포괄하는 감정이 아닐까? 만일 그 아름다움이 형체를 잃었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여전히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내 사랑은 그 형태의 보존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완전한 소멸 이후의 ‘다시 태어남’을 기다릴 수 있는가?


미조구치의 방화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시험하고, 파괴 이후에야 드러나는 진정한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 의미에서 『금각사』는, 파괴를 통해 사랑과 삶을 역설적으로 더 깊이 이해하려는 절실하고 위험한 사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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