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ovedreamer
Sep 09. 2020
옛날 어른 말씀이 <<찍어먹어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나?>>라고 하셨다.
읽어보지 않아도 어떤 느낌을 받을지 알 수 있는 책이 있다.
내가 단번에 비건 채식을 시작해서 무리 없이 반년을 지속해나가는 것을 보고 난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하였다. 몇 년 전 맨 부커 상을 받아서 유명해진 책이라 이미 찜해놓았다 대략 줄거리를 알고 난 후 더 읽기 망설 어지는 책,
긴 스토리 중 마치 사진을 찍듯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전혀 관계없는 것을 하고 있을 때 의도치 않게 반복해서 떠오른다. 겨우 걸을 때 갖고 놀았던 빨간색 오뚝이 장난감이 마당에 오도카니 있는 것, 초등학교 때 놀았던 골목길 양 쪽을 메웠던 분꽃, 종이인형을 한그득 담았던 종이박스, 시장통에 생닭의 털을 뽑던 드럼통처럼 생긴 기계, 초등학교 언덕길의 얼음에 뿌려져 있던 시커먼 연탄재, 수많은 인생 이야기 중에 선명히 떠오르는 몇 장면이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다른 스토리들과 마찬 가지로 머릿속에 여러 번 재탕되면서 각색된다. 수많은 기억들 중 이러한 장면들이 왜 재탕되며 선명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숨겨진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숨겨진 혹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힘을 가졌다.
솜씨 좋은 말꾼이 하는 이야기, 소설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일상의 폭력, 평범한 사람들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대로의 나이기를 바라는 사람에 대한 폭력.
너무나도 무난해 보였던 주인공 영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반복해서 꾸는 꿈, 누군가를 살해하는 , 혹은 자신이 살해당하는 꿈을 꾸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를 죽이는 자신의 숨겨진 폭력성에 대한 공포일까, 아니면 자신이 살해되는 공포였을까?
채식을 시작하면서 채식인에 대한 혐오를 알게 되었다.
뭐 그렇게까지 못 먹어가면서 오래 살려합니까? 이런 점잖은 핀잔부터 그러면 같이 식사하는 사람이 불편하잖아, 골고루 먹지 않으니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텐데, 잘난 체한다. 안 보는 데서 다 먹겠지 등등
오래 살던 짧게 살던 그건 운명에 달린 거고, 같이 식사하는데 고기 먹는 사람이 줄면 더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니 좀 더 많은 양의 당질과 단백질 섭취를 지향하는 인류의 식생활 변천 상 문제 될 것이 없으며 골고루 먹는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최근 몇십 년 되지 않은 허상 같은 믿음이며 (극지방 혹은 과거의 식생활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뭘 먹지 않는다고 해서 착한 척 잘난 척하는 것은 당연 아니올씨다이고, 안보는 데서 먹든 안 먹든 상관할 봐 아니지 않나? 그건 선택의 자유 일뿐.
이런 불편한 비논리적인 혐오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민하였다. 풀을 안 먹는다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나와 다르다는 것이 이유이지 않다. 먹는 것을 공유하지 않는 것만으로 덮어놓고 미워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막연히 그러하다는 것은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숨겨진 폭력성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동물이 가축으로 길러지기 전에는 하나의 독립된 삶을 꾸려가는 생명이었다. 사냥을 해서 먹을 때는 인간이 가진 야수성을 잠재우려 잡은 동물의 영혼을 달래주려 했으며 가축이 된 이후에도 제사의식을 거쳐 고깃덩이를 속에다 집어넣었다.
현대는 축산업이라는 공장을 통해 고기를 생산해내지만 육식을 한다는 것 자체에는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성이 숨겨져 있다.
이것이 혐오의 숨겨진 이유가 아닐까 한다.
무난하기만 한 영혜라는 존재는 남편에게 소통할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기보다는 맡은 역할을 해주기만 하면 되는 대상일 뿐이다. 고기는 고기일 뿐 살아있던 생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왜 아니라고 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 관습에 숨겨진 폭력을 하는 사람은 무엇이 폭력인지 모르며 당하는 사람의 경우는 상처가 깊어지나 영혜처럼 스스로 생채기를 내기 전에 깨닫기 어려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