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현대문학을 읽는 걸 두려워했다. 내가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울타리 밖의 세상은 거대하고 두려웠고 끔찍했다. 유명하다는 소설책을 읽어도 감흥이 없었다. 나에게는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또 다른 삶의 일면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보지 않으면 편한데 그걸 굳이 끄집어내서 글로 쓰고 이야기로 만들고 책으로 엮고. 그 모든 과정이 정신적 학대처럼 느껴졌다.
내가 공감한다 해서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날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극도로 발달해서 주어진 상황 이상을 생각하곤 하니까. 해결할 수 없을 문제를 마주하며 고통을 느끼는 걸 스스로 학대라고 깨달은 이후로는 잔혹하게 드러내는 현대 문학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글의 모토도 즐겁고 재밌는 것이었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겪은 불행 이상을 적는 것도 실례라고만 느껴졌다. 나에게 책이란 현실을 잊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현실의 부조리함과 잔인함을 마주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마주한 이야기들은 죄다 그랬다. 읽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정말 이야기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책장을 덮고 나면 외로워질지라도 어떤 성취감이 들었고 그러면 또 새로운 현실 도피를 찾아 떠나게 됐다.
그래서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이야기와 적당한 불행과 극도의 감정을 섞어서. 원초적인 부분들을 들여다보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단 한 번도 그 모토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작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 한 번 읽었을 때는 공감도 이해도 어려워서 문학은 이런 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번에 본 수상집은 이상할 정도로 공감이 잘됐다. 사람들이 흔히 '불편'하다고 여길 소재들이 잔뜩 나왔는데도 불편하지도 않았고 어둠의 잔상이 남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다.
이걸 불편하다고 여기는 사람과 불편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간격만큼 떨어져 있을 거라는 사실을. 내가 이해하는 입장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그렇구나..... 난 여태까지 굉장히, 굉장히 낭만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었구나. 불편한 소재는 현실에 존재했고 그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세상은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문학은 소외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거라고. 문학이 아니면 그들을 기록할 수 없다고. 삶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건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난 여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사실인지도 알아야 했다. 내가 견디는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서 외면했다는 걸. 그래서 그들은 있는데도 없는 존재처럼 지워진다는 걸.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가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 나는 너무 큰 불행을 이야기로 옮기는 게 무섭고 내가 겪은 가장 큰 불행 역시 시도는 했지만 이야기로 마주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몇 번이나 되새기며 이야기로 만들기에는 마음이 단단하지 않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는 싶다. 가끔 생각나서 들여다보게 되는 책장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서 몸에 힘이 빠지는 문장들을 쓰고 싶다. 그럼에도 이젠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문학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