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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Dec 04. 2023

마음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짐작할 수 없다는 것



오래된 권태기가 끝났다. 오랜만에 다음날 아침을 기다리게 됐다.


내가 가입한 크로스핏 카페에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운태기를 검색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운동에 가는 게 기대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지쳤고 왜 그렇게 뛰고 굴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즐겁지 않으니까 그만두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운동에 다녀오면 너무 피곤해서 하루종일 졸았다. 열 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는데 그러고도 아침에 운동을 갔다. 매일 밤 졸다가 깨달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운동을 그만둘 것인가 말 것인가. 새로 등록한 박스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코치님은 열정적이고 시설도 좋았고 와드도 뭐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운동을 가야 할 때면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기 바빴다.



일본에서 크로스핏의 재미를 잃은 걸까? 아니면 박스에서 친구를 못 만나서 그런가? 이유가 어찌 됐든 나는 너무 외로웠다. 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운동을 또 쉬게 됐다.


쉬는 동안은 나쁜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만둘까 싶다가도 내가 운동을 그만두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스스로 곰곰이 생각했다. 난 정말 그만두고 싶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게 엄격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나한테 운동은 1순위가 될 수 없는 게 당연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왜 나는 스스로에게 강요했을까. 사실 내가 운동을 하는 건 내가 즐기려고 하는 건데.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고 채찍질했던 걸까.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운동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놓았다. 내가 크로스핏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떠올리고 그걸 포기하고 싶은지 고민했다. 그 부분은 오랫동안 생각해야 했다. 내가 포기해도 평생 후회하지 않을지 생각해야 했으니까.


결론적으로 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느리더라도 그냥 하고 싶었다. 남들만큼 못하면 어떤가. 내가 닿고 싶은 경지가 있는데.



운동은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은 탓인지 새로운 친구가 생긴 탓인지 요즘은 운동이 즐겁다. 오래 해볼 생각으로 역도화도 장만했다. 내 첫 역도화는 너무 예쁘고 반짝거려서 이 친구와 함께라면 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점 대신 좋은 점들을 발견하고 있다. 운동 덕에 매일 일찍 일어나고 매일밤 깨지 않고 잘 잘 수 있다. 가벼운 몸을 유지하려다 보니 과식하지 않고 체력도 좋아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운동을 끝낸 후의 성취감이 반갑다.



마음이 식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끌어안아야 하는지, 그것들은 영원히 내 세계 밖으로 사라져야만 하는지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고 그런 사실에 눈물 흘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랐다. 슬퍼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그 사실은 이미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휘감고 있어 받아들이고 말고의 선택지도 없었다.


가장 예측하지 못한 건, 내가 잠깐 밀어내버린 것들이 다시 내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잠깐 밀려났을 뿐 자신의 또 다른 자리를 찾기 위해 내 주위를 배회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돌아왔을 때의 기쁨이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는 기분이었다.




오랜 권태기는 그렇게 끝이 나고 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좋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하자. 포기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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