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어
방황했던 과거에 감사하며
오늘은 좋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고, 계간지를 펼치며 내 소설 이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들떴던 것 같다. 당연히는 아니더라도 분명 내 소설 이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다. 대신 나와 공부한 다른 사람의 글이 있었고 굉장히 뿌듯하면서도 흐뭇했다. 그분에게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친구가 대기업에 합격했다. 축하를 건넬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 좋아요만 눌러주고 말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저번에도 느낀 적 있었는데. 그래, 2년 전이다.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아득해져 버린 그 시간.
코로나가 시작됐던 시기에서 1년 정도 더 흘렀던 때였다. -그 시기에 힘든 일을 겪은 분도 많을 테니 뭐라고 하긴 어렵겠지만-내 인생에서 그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완벽한 전환점의 시기였다. 그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 만큼. 그때 나는 새로운 것들로만 인생을 가득 꾸렸다.
꾸준히 중국어 공부하고 있었고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빠르면 7시, 늦으면 8시에 일어나서 매일 1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인생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다. 하지만 인스타에 올라온 친구들의 활동을 보고 불안함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세울만한 게 없는데 친구들은 환하게 빛났다. 학교 홍보대사가 되거나, 인턴을 시작했거나, 유명 대외활동에 시작했거나. 내가 울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왜 내 노력은 눈에 보이지가 않는 건지. 왜 나는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하는 건지. 왜 나는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건지.
순간의 서러움은 울음이 됐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바람에 부모님은 나를 달랜다고 제법 애를 먹었다. 위로라고는 일절 하지 않는 아빠가 말했다.
"네 노력은 지금 보이지 않는 거뿐이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다 알아. 그렇지?"
엄마도 열심히 위로했다. 우리 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다고. 그래서 더 울게 됐다. 노력이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내 노력은 아무도 몰랐다. 오직 나밖에.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였고-지금도 그렇지만-당시에는 그걸 알면서도 서러웠다. 아무래도 비교는 나와 같은 레일에 서 있는 애들한테 하게 되는 거니까. 그때 느꼈던 서러움과 막막함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아마 여태껏 쌓아온 울분 같았다. 내가 정말 나가고 싶었던 행사 때문에 2학기는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글도 제대로 못 쓰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행사를 위해 쓴 시간과 돈이면 소설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바보처럼 뭐가 우선순위인 줄도 모르고.
남들은 인턴이니, 취업이니 하고 있는데 그림이나 그려대면서 꿈을 외치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련했다. 왜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여서 힘들어하는 거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그 서러움이 북받쳐서 그저께는 눈물도 조금 흘렸다. 소설이 써지지 않는 막막함과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절망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제도 잠깐 절망했고 오늘도 최종심에 올라가지 못한 사실로 틈틈이 절망했다. 누구는 대기업에 합격한 날 누구는 예선 탈락이라니. 신은 참 냉정하기도 짝이 없다.
그래도 나는 알았다. 영원히 보답받지 못할 것 같은 노력이 뭐가 되어 돌아오긴 하더라.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발자국을 남긴다. 노력이 보답받지 못한다고 징징 거렸던 그때의 내가 포기하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해 겨울에 죽지 않았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더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나가고 글을 쓸 때 성장하는 날을 만나게 됐고, 뜻밖의 공모전에서 최종심이라는 결과도 만났고, 여러 행사에 나가게 됐다. 엄청나게 잘하게 되는 게 아니더라도 속도가 느린 공부도 즐겁다는 걸 알았다. 우울할 때마다 중국어를 듣거나 단어를 외우면 얼마나 기분 전환이 되는지 모른다.
지금의 나도 답답하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꿈은 이제 오로지 작가가 되는 것뿐인데, 그 꿈조차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괴로울 때가 많다. 최종심에 한 번 올라가면 영원히 노력할 동력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영구기관이 없는 건 확실하다. 이번 공모전에서는 예선 탈락을 맛보며 그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 노력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쌓아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작년의 나라고 알았겠는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쁜 일이 생기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떠오르며, 이해하지 못했던 가르침이 내 머릿속에 흡수될 거라는 사실을. 그 애는 아무것도 몰랐을 거다. 올해의 내가 생각보다 어려운 전공 수업을 잘 해내고 있고, 미뤄놨던 교양 수업을 제법 즐겁게 들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또다시 즐겁게 운동할 거라는 걸.
그러니까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노력할 거다. 너도 몰랐지, 하고 미래의 내가 선물 같은 소식을 가져다주길 기다리면서. 내 노력을 파이반죽처럼 납작하게 쌓아서 바닥을 단단하게 다질 거다. 절망에 빠질 것만 같을 때면 나에게 묻는다.
너 그럼 이제 글 안 쓸 거야?
아니, 난 쓸 거야. 작가님 말대로 나는, 정말 대단한 작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정말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니까.
너한테 재능이 없으면 어떡할 거야?
새삼스럽게. 나한테 언제부터 재능이라는 게 있었다고. 항상 그랬잖아. 나는 노력하고 싶으면 그냥 노력하는 거야. 재능이라는 건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졌어야 하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내가 나를 가장 오래 본 사람으로서 장담하는데, 내 인생에서 쉬운 건 하나도 없었어. 뭐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됐어.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물론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 빨리 포기해서 안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그랬어.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하고, 잘하고 싶으니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앞으로도 마음껏 절망할 거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거고 때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 거다. 그래도 계속 노력한다면 1년 뒤의 나는, 2년 뒤의 나는, 10년 뒤의 나는, 이것보다 좋은 글을 쓰겠지. 그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가는 길이 틀린 길은 아닐까, 잘못된 곳으로 가는데 그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 불안했다. 남들 다 가는 길을 안 가고 나 좋다는 길만 가고 있으니까. 진짜 한심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눈앞에 보이는 경치가 다였고 저 언덕을 넘어가면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 뒤에 있는 큰 산을 넘어가면 길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되돌아와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런 생각만 했다. 왜 나는 나를 믿지 못했을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믿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나아가는 거였다. 날 믿어서 노력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나는 그냥,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의 선택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다. 그게 제대로 된 길이었는지는 지금이 되어서야 대충 보인다.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길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너무 제대로 걸어왔더라. 없는 길을 만들고 닦아가면서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더라. 그래서 난 지금의 나도 믿기로 했다. 괜찮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지금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두렵고 무섭다. 내 선택이 내 미래를 잘못된 길로 이끌까 봐. 이 순간을 후회하며 살게 될까 봐.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더 어두운 시간에 제대로 된 선택을 했다. 그러니 지금도 믿는다. 내 노력은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는다고. 그 노력이 몇 년 뒤에 아주 거대한 선물로 찾아오게 될 거라고. 어떡하겠어. 지금의 나는 마구 방황하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우리 모두, 멈추지 말자. 의심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자. 미래의 나에게 지금을 변명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 되게 잘했지. 엄청 용감하고 대견하지? 하고 웃으며 말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