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번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그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내 자신이 나약해졌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내가 첫 직장을 퇴사하던 날이었다. 누구는 말했다. 그렇게 좋은 직장을 어떻게 때려 칠 수 있냐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분명히 후회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그렇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잘 버티고 있는 입사동기들을 보면 후회의 ‘히읗’을 한 번 생각해본다.
내가 그 곳에서 계속 일했다면 월세탈출이었을텐데... 부모님께 더 맛있는 것, 더 좋은 것을 많이 사드렸을텐데.... 카톡프사 속 행복하게 웃고 있는 동기들의 사진을 보며 내가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었나... 그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첫 번째, 사회는 무서운 곳이었다.
간호학과를 전공한 나에게 취직은 어떻게 보면 참 쉬웠다. 학교에서 하라는대로 공부했고, 학교에서 지원하라는 대로 대학병원에 지원했다. 입사지원서를 내던 날도 두 번의 면접을 보던 날도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가는 소풍길 같았다. 대학교 4학년, 이미 취직이 확정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졸업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삶을 살았던 것들이 나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냥 모든 것들이 순탄했다.
처음으로 부서에 배치되던 날, 순탄했던 내 삶은 조각나기 시작했다. 종이에 써진 내 부서명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신규직원들이 버티지 못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다 원하던 부서로 배치되었는데 왜 나만 이렇게 혼자 떨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운들을 다 써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허탈한 마음으로 부서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는 참 바쁜 곳이었다. 환자는 많은데 인력은 부족했다. 부서입장에서도 신규직원을 계속 트레이닝 하고 있었지만 계속 퇴사하다보니 연차와 경험이 쌓이지 않아 지친 상황이었다. 그렇게 신규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난 떨어졌다.
내가 그 곳에 인사를 드리러 가서 처음 들었던 말은 이거였다.
"결국, 너도 나가게 될건데 내가 왜 널 가르쳐야 하니. 적당히 있다가 알아서 퇴사해."
참, 무서웠다. 그 말이. 그리고 참 오기가 생기는 말이었다. 난 나름 학교에서 인정받던 사람이었어. 여기서도 인정받을 자신 있어. 절대로 퇴사하지 않아. 여기서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틸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다. 흠, 기대가 너무 컸다. 인정받길 바랬다니...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바래서는 안되었다. 그저 평온한 삶 아니 하루하루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의 기대. 딱 그 정도의 기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