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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윤원 Nov 12. 2020

나는 생각보다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

퇴사한 간호사의 취준일기. 그대는 단 한번도 빛나지 않았던 순간이 없다.

두 번째, 나는 생각보다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


 간호사로서 정규시간 동안 환자를 케어해야 할 일 말고도 신규로서, 막내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첫 번째 일은 '환자분들의 변 사진 찍기'였다. 변 사진. 말 그대로다. 똥 사진을 찍어야 했다. 소화기암환자들은 혈변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일일이 간호사가 이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난 우리 병동에 입원한 50명 환자분들의 변 사진을 매일매일 찍었다. 기저귀에 있는 변 사진. 화장실에 있는 변 사진. 변을 보고 나면 기력이 없으셔서 뒷처리를 부탁하는 분들도 계셨다. 나는 장갑을 끼고 휴지를 빼서 엉덩이와 다리에 묻은 변들을 모두 닦아드렸다. 더러워진 환자복 바지를 새 바지로 갈아입혀드리고 침상에 눕혀드리고나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고 나는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두 번째로 맡은 일은 '전화받기'였다. 다른 부서나 수술실, 검사실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환자분에게 주사약을 투여하고 있다가도 전화가 오면 빨리 마치고 뛰어나가 받아야 했다. 선생님들은 스테이션에 앉아계셔도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막내들이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전화 받는게 참 두려웠다. 신규이기에 아는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 전체 시스템도 다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요청을 받는 일이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제대로 내용을 들은 것이 맞는지, 내가 제대로 설명한 것이 맞는지 너무 무서웠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전화벨소리가 띠리릭 하고 울렸다. 환청이었다.


 세번 째로 맡은 일은 '물품 개수 확인하기'였다. 미리 물품을 사용하고 나서 제자리에 있는지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물품들이 항상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품들은 카트 위에서, 스테이션 위에서, 물품보관실에서 혹은 환자의 침상 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 넓은 병동에서 물품 1개를 찾느라 1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나는 물품 개수를 확인해야 하는 날이면 매일 2시간씩 일찍 출근했다. 물품을 찾다가 환자분 간호시간에 늦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 날도 열심히 물품을 찾고 있는데 딱 한 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사라졌는데 아무도 쓰신 분이 없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그저 잘 찾아보라고만 하실 뿐이었다. 2시간 동안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나는 부서장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부서장님은 이 물품을 마지막으로 쓴 사람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하지만, 없어진 물품을 자신이 마지막으로 썼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을리 만무했다. 당연히 그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열심히 여쭤보았는데 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가 시말서 쓰면 되겠네. 그럼 간단하게 끝나잖아. 네 잘못으로 잃어버렸다고 하고 물품청구 받아."

 이건 내가 잃어버린 물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끝내는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내 잘못인척 하는 것. 결국 나는 시말서를 쓰고 물품을 새로 청구받았다.


  네 번째, 시설 관리하기.  새벽 1시, 이전엔 참 고요한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몸이 아파 끙끙거리는 환자분들의 신음소리, 보호자분들의 걱정소리가 계속 들리는 시간이었다. 환자분들에게 드릴 약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보호자 한 분이 찾아오셨다. 지금 화장실 세면대가 막혔다고. 새벽 1시에 설비시설팀이 존재할리가 없었다. 나는 내일 아침에 해결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하고 있던 약품정리를 마저했다. 

  그 때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불편하시다잖아. 네가 어떻게 해봐."

 흠. 나는 변기 막힌 것도 뚫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세면대를 어떻게 뚫겠는가. 뚫을 수 있는 도구들을 찾아봤지만 청소용품 창고실은 굳게 잠겨있었다. 급한대로 세면대에 나온 물들을 마른 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걸레로 닦아도 물은 계속계속 흘러나왔다. 빨리 닦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약 정리 시간을 어기면 안되니까. 세면대에선 물이. 내 마음에선 눈물이 흐르는 거 같았다.


  다섯 번째, 간호복 관리하기. 선생님들이 입으신 옷들을 모두 모아 퇴근할 때 지하에 있는 세탁소에 가져가고 출근할 때 세탁소에서 간호복을 찾아와야 했다.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모든 옷을 모아서 끌개로 끌면서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고 한 개의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내려가야 위치한 곳이었다. 열심히 끌고 가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부서장님을 만났다. 

  "이걸 끌고 다니면 품위가 없어보이니까 저기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오렴."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엘리베이터를 세 번 갈아타야했다. 그리고 화물도 같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라서 엘리베이터 잡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낑낑대며 뒤쪽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바퀴가 낡을대로 낡아서 잘 굴러가지 않는 끌개를 있는 힘껏 밀었다. 계속 밀면서 제발 엘리베이터를 한 번에 잡을 수 있기를 빌었다.


  여섯 번째, 심부름. 물품관리 중에 한 선생님이 부르셨다. 어서 가서 떡볶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병동에 올라오기 전에 시켰던 건데 지금쯤 도착했을 거라고. 일단은 카드를 받아 내려갔다. 하지만, 병원의 입구는 엄청나게 많았다. 동문인지. 서문인지. 북문인지. 병동으로 전화하니 다른 선생님이 받으셨다.

  "넌 환자 간호해야 할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니?" 

  "아아, 000선생님께서 떡볶이를 가져오라고 하셔서요. 000선생님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병동전화는 환자용이야. 핸드폰으로 해." 하고 끊으셨다. 

   출근한지 5일차. 아직 25명의 부서원 선생님들의 이름도 낯선데 당연히 선생님들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었다. 한 번 더 믿지도 않는 신을 호출했다. 제발 떡볶이 배달기사님을 지금 만나게 해주세요.

이런 일을 계속 하면서 난 참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숲을 볼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나무를 자세하게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일을 맡지도 않았으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고. 난 정말 쓸모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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