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경계를 세우기로 했는가
나는 오랫동안 울타리를 만드는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울타리는 배제의 상징처럼 보였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장치로 느껴졌다. 울타리 안과 밖을 나누는 행위는 언제나 누군가를 밀어내는 선택이며,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기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많이 참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반드시 열린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경계가 없는 삶은 종종 침범당하는 삶이 되었고, 이해라는 이름으로 넘겨왔던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소진시켰다.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무엇을 더 이상 넘기지 않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 한, 삶은 계속해서 타인의 기준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글들은 그 기준을 세워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신념이라는 질서, 성공이라는 가치 아래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바라보며, 내가 끝내 지키고 싶은 삶의 형태를 정리해 온 시간의 흔적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도 아니고, 과거를 단정적으로 정리하려는 고백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떤 선택 위에 서 있는 사람인지,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정확히 말해보고 싶었다.
울타리는 도망치기 위해 세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했다. 더 이상 모든 요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 모든 관계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모든 기대를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누군가로부터 달아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반경을 스스로 정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선택들 위에 지금의 내가 서 있다.
이 글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무엇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나의 몫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본 적이 있다면, 이 기록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울타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사람, 감당 가능한 삶의 크기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으로. 이 글은 그 선택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이어졌는지를 차분히 따라간 기록이다.
모든 시작은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