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울타리가 필요한 때
연을 끊는다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나는 그것이 하나의 결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의 결과에 가까웠다. 관계가 단번에 무너진 적은 없었다. 다만, 의미를 지탱하던 이유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공백을 애써 메우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절을 도피로 이해한다. 견디지 못해서 떠났거나, 감당할 힘이 부족해서 등을 돌렸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시선을 예상했다. 실제로 그 결정 이후, 몇몇 관계에서는 노골적인 비난과 실망이 함께 따라왔다. 하지만 그 판단들 속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었다. 나는 떠나기 위해 연을 끊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왜 이어가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멈춘 것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나에게 의무에 가까웠다. 사랑이나 친밀함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책임과 역할이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지켜야 할 선과 넘지 말아야 할 금기가 분명했고, 그것을 어기는 순간 관계는 쉽게 불안정해졌다. 문제는 그 규칙들이 나를 보호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나를 조정하고 수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나는 한동안 그 조정을 성장의 과정이라 믿었다. 나 자신을 다듬는 일, 부족한 부분을 고치는 일, 더 성숙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해졌다.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축소에 가까웠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고,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생각과 감정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고 있었다.
연을 끊겠다는 결정은 그런 상태를 더 이상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자신을 설명하지 않거나, 반대로 끝없이 변명하는 위치에 서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신념 체계 안에서 내 삶의 선택이 재단되는 구조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 선택이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결정을 수없이 흔들었다. 죄책감은 예외 없이 따라왔고,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 속에서도 하나만은 분명했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내가 만든 가족까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고 방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떠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머물렀고, 충분히 고민했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설명할 수 없게 된 지점이 있었다. 그 지점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희미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관계를 내려놓고 나를 지킬 것인지.
연을 끊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더 이상 어떤 방식의 관계를 살 수 없는지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모든 연결이 유지되어야 할 이유를 갖는 것은 아니며, 끊어짐 역시 하나의 책임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관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지되는 연결, 혈연이라는 이유로 설명을 강요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면 지속될 수 없다는 기준이 생겼다. 이 기준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선이었다.
연을 끊은 뒤, 삶이 곧바로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다만 분명해진 것이 있다. 더 이상 나는 관계를 위해 나 자신을 줄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후 내가 새로운 가족을 대하는 방식에도 깊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