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선택하는 관계와 삶의 범위
연을 끊고 나서 한동안은 비어 있는 느낌이 컸다.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삶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구조가 갑자기 없어졌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 구조는 보호막이기보다는 규칙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벗어나고 나니 자유보다 먼저 낯섦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종종 단절 이후의 삶을 공백으로 상상한다. 외로움이나 상실 같은 감정이 전부일 것이라 말한다. 실제로 그런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이제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전에는 이미 주어진 기준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판단을 미뤄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이제는 그 기준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울타리’라는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울타리는 밖을 밀어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안을 지키기 위한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가족의 울타리는 너무 넓었다. 누구의 신념이든, 어떤 요구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결과 안쪽에 있는 개인은 늘 흔들렸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울타리는 달랐다. 그 안에는 몇 가지 분명한 기준이 필요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 판단받지 않아도 되는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거리감이었다. 이 기준들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이미 겪어본 실패의 반대편에 놓인 것들이었다.
아내와 함께 살아가면서 나는 그 울타리가 실제로 어떤 형태를 띠어야 하는지를 배워갔다. 의견이 다를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상처가 생겼을 때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디까지 요구할 수 없는지를 하나씩 확인해 갔다. 이전의 가족 안에서는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의 가족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울타리의 의미는 더 분명해졌다. 나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제로 보호해야 할 존재들이 생겼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어떤 말이 허용되는지, 어떤 태도가 반복되면 안 되는지, 어떤 관계는 처음부터 들이지 않는 것이 더 나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책임 있는 사람’이 되는 쪽을 택했다. 모두에게 이해받는 선택이 아니라, 안쪽의 사람들에게 설명 가능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때로는 냉정해 보였고, 때로는 지나치게 단호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준이 흔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울타리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선택의 연속이었다. 받아들이는 것보다 거절하는 일이 더 많았고, 연결보다 거리 두기가 더 필요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안쪽의 삶은 점점 안정되었다. 감정은 예측 가능해졌고, 관계는 설명 대신 신뢰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가족을 ‘버텨야 하는 공동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조정하고 점검해야 하는 구조로 이해한다. 그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필요할 때는 단단하게 보강하고, 불필요하게 넓어질 때는 다시 좁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울타리를 만든다는 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충분히 통과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 판단을 더 이상 남에게 맡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삶의 안쪽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다음 세대를 향해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