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울타리가 무너진 순간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병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라움이나 슬픔보다 먼저 떠오른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었다. 마치 오래 끊긴 뉴스가 다시 연결된 느낌에 가까웠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연결이 형식적으로만 복구된 상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내 삶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고,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그분이 속한 세계와 내가 발을 딛고 선 세계가 너무 달라, 서로의 언어가 닿지 않는 상태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의미는 전달되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규칙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의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체계에 가까웠고, 신앙이라기보다는 질서에 가까웠다. 그 안에서 개인의 선택은 늘 뒤로 밀렸고, 질문은 환영받지 못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정답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인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교정의 대상이 되었다. 옳고 그름은 논의의 영역이 아니었고, 순응 여부만이 중요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질서에 비교적 잘 순응하는 편이었다.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불편함은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해석했고, 이해되지 않는 감정은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여겼다.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믿었고,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견디는 능력이 어른스러움이라고 배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가족 안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접어가며 살아왔다.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은 그런 균열 위에 놓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즉각적인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담담한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슬퍼해야 할 상황에서 슬픔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상태보다도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감정이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올 위치 자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 나는 여러 번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냉정함인지, 방어인지,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끝난 관계가 자연스럽게 남긴 결과인지.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순간에도 나는 ‘아들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이 관계가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역할보다 관계를, 의무보다 의미를 따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결국 관계를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대신 그동안 애써 미뤄두었던 질문들을 한꺼번에 꺼내놓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은 어디까지 책임이 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그 질문들은 조용했지만 집요했고, 단순한 애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판단이 먼저 시작되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가족의 형태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신념이나 체계에 의해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지금의 내가 만들고 있는 가족 역시 같은 방식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이 함께 찾아왔다. 그 불안은 막연하지 않았고, 충분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대신 내가 어떤 삶을 이어가고 싶은지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버티는 가족’이 아니라 ‘선택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내해 온 것들과, 더 이상 넘겨서는 안 되는 선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것은 단절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지속을 위한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 글은 아버지를 비판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또한 과거를 정리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다만 내 삶에서 가장 오래된 울타리가 무너졌던 순간을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것이다. 그 붕괴는 파괴라기보다는 노출에 가까웠고, 덮어두었던 구조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나는 다른 울타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선택들은 모두 여기서 시작되었다. 연을 끊는다는 결정을 포함해, 내가 가족의 경계를 다시 그리게 된 모든 이유는 이 경험 위에 놓여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쥐기 시작한, 아주 구체적인 지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