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버지가 되면서 알게 된 것들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 남기고 싶은 것

by 민도혁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기쁨보다 책임감이었다. 막연한 감동이나 벅참보다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자각이 먼저 찾아왔다. 이 아이에게 나는 선택지가 아니라 전제가 될 것이고, 나의 태도와 판단은 설명 없이도 기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보호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처음 만난 어른’으로 남게 될 사람이었다.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관계를 해석하는 기준, 사랑과 거절을 받아들이는 태도까지도 일정 부분은 나를 통해 배울 것이었다. 그 사실은 기쁘기보다 조심스러웠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자주 떠오른 것은 다짐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가, 어떤 순간에 멈춰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아이에게서 빼앗지 말아야 하는가.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내게는 재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감정에 대한 태도가 그랬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감정이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교정의 대상이었다. 슬픔은 믿음이 부족한 결과였고, 분노는 교만의 징후로 해석되었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는 순간에도, 나는 그 감정을 없애야 할 문제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대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이 앞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완벽한 어른이 되려 하지 않았다. 실수할 수 있고, 모를 수 있고, 때로는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려 했다. 대신 잘못을 인정하는 방식, 사과하는 태도, 다시 선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권위로 눌러버리는 대신, 설명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장면들이 자주 겹쳐 떠올랐다. 질문을 삼켰던 순간들, 이해되지 않는 규칙 앞에서 침묵했던 기억들,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불순하다고 여겨졌던 공기. 나는 그 기억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지금의 선택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버지가 된 이후, 나는 부모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기보다는 나 자신의 한계를 더 정확히 보게 되었다. 무엇을 줄 수 있고, 무엇은 끝내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선택에 신중해졌다. 아이에게 남길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약속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감내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 시기에 구체화되었다. 아이가 자라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지우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나는 관계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싶었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며, 소속은 침묵의 대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전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매일의 선택, 사소한 말투,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순간들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여전히 흔들렸고, 때로는 예전의 방식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기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좋은 부모란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점검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이제 나의 울타리는 단지 나와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자라날 존재들을 위해 더 단단해야 했고, 동시에 숨 쉴 수 있을 만큼 유연해야 했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질 질문은 자연스러웠다. 이 울타리 안에서 나는 어떤 어른으로 남을 것인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나를 돌아볼 때, 무엇이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5편.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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