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

선택 이후에 남은 태도

by 민도혁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과거를 자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잊어서가 아니라, 굳이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회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시간을 다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선택들, 그 판단들, 그 불편함과 상처들까지 포함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성공을 더 나은 조건으로 이동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자유, 더 넓은 선택지, 더 유리한 위치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은 이동이 아니라 정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더 얻느냐보다,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멈추는 법을 배우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랫동안 버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불합리함을 견디고, 이해되지 않는 구조 안에서도 스스로를 조정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멈춘다는 선택이 도망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다. 내 기준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관성에 의한 포기가 되지는 않을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하지만 멈춰 서서 돌아보았을 때,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선택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경계를 다시 그린 일, 일의 방식과 속도를 조정한 일, 시간을 쓰는 기준을 바꾼 일. 그 모든 선택들은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의 형태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내 삶은 여전히 소수파에 가깝다. 가족을 중심에 두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성취를 추구하는 방식은 흔하지 않다. 주변에서는 더 바빠져야 한다고 말했고,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나의 삶은 아니라는 점은 점점 분명해졌다.


나는 하루 종일 바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도 전화를 붙들고 있는 아버지, 주말에도 자판을 두드리는 어른으로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키고 싶은 성공은 삶을 잠식하지 않는 성취였다. 멈출 줄 아는 사람만이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기준이었다.


되돌아보면, 지금의 삶은 수많은 단절 위에 세워져 있다. 관계의 단절, 역할의 단절, 기대의 단절. 하지만 그 단절들은 공백이 아니라 재배치에 가까웠다.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는 여전히 배고프지만, 무엇을 위해 배고픈지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출근 준비에 쫓기지 않고 거실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이런 장면들은 성취의 반대편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선택한 성취의 결과였다. 이 삶이 가능해지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을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게 맞는 삶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10년 뒤의 내가 지금을 돌아본다 해도, 이 선택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포기였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흔들렸고, 그 위에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삶이라는 말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감당 가능하기에 나온다. 상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삶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보다, 무엇을 잃지 않았는지를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 글을 마치며 나는 더 이상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의 모델이 되기 위해 살고 있지도 않다. 다만 시간이 흘렀을 때, 이 삶이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 이 길을 돌아볼 때,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삶은 아름답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후기. 울타리 안에서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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