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y Feb 23. 2021

어제 찍은 사진을 우리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양정욱 개인전 

대화의 풍경 2: 저녁이 되면 말하는 것들, 2018, 혼합재료
대화의 풍경 2: 저녁이 되면 말하는 것들, 2018, 혼합재료




오늘 삼청동에 갔던 이유는 '양정욱' 작가의 전시를 볼까 해서였다. 

개인전으로는 첫 전시인듯한 이 작가에 대해 나는 금시초문이라 이동하는 내내 자료를 찾아 읽었다. 기대주로 꼽히는 젊은 아티스트에게 주는 상도 받고, 국내 굴지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를 여러번 올렸다. 만담꾼,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극찬하는 글들이 보였다.


전시장 문을 열자 중세의 어느 괴짜 발명가가 만들었을법한 거추장스러운 설치 조형물들이 가득했다. 기본적으로 키네틱 아트 Kinetic Art 로 분류되는 작품들이다. 물론 작가 본인은 작품을 키네틱 아트 장르 안에만 국한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어쨌거나 작품을 이루는 오브제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운동을 반복하고있고, 빛의 반사나 빛 자체로 변화를 주기도 하면서 작품의 대부분이 조각의 형태로 나타나는 점 등이 키네틱 아트의 개념과 일맥 상통한다. 


예술가는 흔히들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데, 양정욱의 경우, 풀어내는 방식과 재료에 있어서 매우 솔직하고 독특한 인상을 지울수 없다. 어느날 우연하게 마주치는 관계, 어색함 속에 대화의 물꼬를 틀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 사람들의 말못할 속사정. 그 속에 담긴 꿈. 희망. 그 미묘한 것들의 어느 지점을 그려낸다. 사람들의 일상 속 어느 자세에 주목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 개인의 이야기들, 끊어진 대화, 어설픈 흔적. 대화를 하고 또 해도 산넘어 산인 조율되지 않는 의견 차. 대립. 모든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의 면면이다. 



우리 삶의 바닥에 있는 가장 딴딴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이야기를 탄탄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죠.

양정욱 인터뷰 중



나무와 돌 플라스틱, 호스, 철사, 끈과 지푸라기들 천조각. 작은 사람이나 동물 모형들, 모터와 전구 무게추와 지렛대 이 모든것들의 이음새를 연결해주는 고리와 매듭과 나사들까지. 볼수록 정감이 가는 이 괴짜 조각들. 멀리서 보면 별로 끌리지 않는 투박한 잡동사니처럼 보일 뿐인데, 가까이에서보면 일상속 친근한 재료들이 조목조목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며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네는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진다. 모터가 느리게 작동되고, 흔들리며 돌고 도는 작품의 일부 몸체들은 곧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자각하게하는 시계추가 되고, 나는 오랫동안 버티고 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게 예술이란 화려하고 값비싼 재료에 온갖 기교를 뒤섞어 금새 번쩍했다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닌, 늘 우리곁에 있으면서도 어느샌가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나타나 덜컥 이야기를 건네는 존재 그 자체이다.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들 2, 2017, 혼합재료


대화의 풍경 T-8, 2018, 혼합재료



이러한 구조물을 작업할 때 보통은 움직임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적합한 구조나 형태, 운동 방식을 선택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보여주고자 하는 형태가 우선이에요. 
예를 들어 ‘아버지’라는 소재가 있다면
추상적인 형태로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그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생각하고
소리나 여러 오브제를 선택하여 추가하는 식입니다.

양정욱 인터뷰 중


이제는 만나지 않는 친구들 1, 2017, 혼합재료


Installation view of 어제 찍은 사진을 우리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2019




그는 언제부터인가 졸고 있었다.
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고, 가장이 되어서도 그는 졸고 있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꿈을 꾸었다. 
일등이 되는 꿈, 승진이 되는 꿈. 
넒은 집에서 가족과 웃는 꿈같은 것을 말이다. 
그는 이제 졸면서도 같은 꿈을 꾼다. 
아마도 그 꿈은 아침에 꾸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는 고개를 아슬아슬하게 끄덕거린다.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구고 다시 꿈을 꾼다.
그는 언젠가부터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 작가 코멘터리 중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는 과정은
저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제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양정욱






양정욱 Yang Jung Uk

양정욱은 일상의 긴밀한 관찰을 통해 우리가 쉬이 지나치는 삶의 면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재구성한다. 그 이야기는 다시 작가의 생각 속에서 추상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고, 각종 오브제와 목재, 실 등에 소리와 빛, 또는 움직임이 동반되어 하나의 구조물로 조형화된다. 특유의 서정적이며 공감각적인 작업으로 알려진 양정욱은 갤러리현대에서 2011년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기획한 《Class of 2011》 전시와 2016년 역량 있는 작가들을 한데 모아 선보인 3인전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에 참여한 바 있다.

양정욱은 두산갤러리 (뉴욕, 2015), OCI미술관 (서울, 2015), 게르게닉 미술관 (프랑스, 2017), 동탄아트스페이스 (화성, 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성곡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두산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 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양정욱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 미술관 그리고 미국 유타 주의 유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동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