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정의 시작, 예술가들이여 너의 눈을 믿어라!
고대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와 크레타(미노스) 그리고, 미케네 미술을 자양분 삼아 독자적인 미술 양식을 발전시켰다, 미술사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미술을 시기에 따라 4가지 양식으로 구분하였는데 통상 기하학적 시기, 아르카익 시기, 고전기, 헬레니즘기로 구분한다. 기하학적 시기는 말 그대로 출토된 유물들에 기하도형의 문양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이 시기의 시작점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잡는 것이 보통이지만, 처음 약 2~300년 간의 미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그리스 암흑기'로 칭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직전 단원에서 설명을 하였다.
고대 그리스 미술의 시기 별 양식
아르카익 시기 도자기 / BC 800~700년 경
서양미술사에서는 고대 그리스 미술을 아르카익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르카익이란, '태초의', '더 낡은'이란 뜻으로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당시 역사적 상황을 잠깐 살펴보면, 작은 부족사회에서 조직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도시국가 체제로 그 규모가 커져가는 시기로 인구와 농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즉, 수요와 공급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상업, 무역을 통한 폴리스 간 교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각 도시들 간의 빈부 격차가 차츰 벌어지게 되었고 그중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약육강식의 시대, 부족에서 도시 국가로의 팽창은 자연스럽게 폴리스 간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을 유발했고 이는 곧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잦은 전쟁으로 인한 뒤숭숭한 분위기는 참전 전사들의 용맹함과 영웅적 행동을 추앙하게 만들었으니 이들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인물로 이상화되기에 이른다. 결국, 이 영웅적 이상화는 당시 시대적 소명이 되어 귀족이나 권력자들이 전쟁을 독려하고 승리를 위한 선전물, 더 나아가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까지 활용한 측면이 강했고 그 역할을 미술이 담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귀족은 때때로 전사 계층을 대표했고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상화된 영웅적 이미지는 결국, 자신들을 찬미하고 사회적 지휘를 강화하는데 유용했다. 이러한 이유로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이 '쿠로스(청년 나체 입상 조각의 총칭)'로, 이상화된 남성 전사의 이미지를 시각화하였고 미적 표현보다는 귀족들의 힘과 위신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쿠로스 조각들은 미술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되었는데, 곰브리치는 아래 쿠로스 조각상의 무릎의 표현을 보고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이 입상들은 일정한 공식에만 따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히 '무릎'이 진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내는 데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스의 모든 조각가들은 특정한 인체를 표현하는 '자기의 방법'을 알고자 했다. 그들의 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혁명이 시작만 되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_P 77, 78 / Story of ART
아르고스의 폴리메데스, 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 / BC 615~590년 경
위 조각은 아르카익 시대의 대표적인 쿠로스 조각 중 하나로, '클레오비스와 비톤'이라는 신화적 인물들을 조각한 것이다. 이 두 형제는 신화에서 어머니 헤라를 위해 봉사한 이야기로 유명하며, 그들의 효심과 용맹이 조각상에서 이상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델포이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에 헌납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유물이 있는데, 당시 그리스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도자기이다. 생활필수품인 도자기 표면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전사들이 전투에서 싸우는 모습이나 전쟁 준비를 하는 장면들이 자주 표현되어 당시 사람들에게 전쟁의 중요성과 전사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이러한 전사들과 그들의 가족을 표현함에 있어 위 '무릎'의 사건과 같은 획기적인 표현 기법을 볼 수 있으니,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정면에서 본 발을 표현한 그림이다. 곰브리치의 말대로 예술가들이 눈을 사용한 이래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표현하는데 약 3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이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고대의 규칙들이 깨지고 또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본 것에 의지하기 시작하자 진정한 사태가 전개되었다. 화가들은 무엇보다도 위대한 발견, 즉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기원전 500년 조금 전에 미술 역사상 최초로 발을 정면에서 본 것을 그리는 시도를 감행했을 때 그것은 미술사상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었다."_P 78, 81 / Story of ART
*단축법 : 대상을 정면이 아니라 위나 아래에서 혹은 비스듬하게 바라봄으로써, 인물이나 물체의 길이가 실제보다 짧아 보이도록 그리는 회화 기법.
전사의 작별(적회식 도자기) / BC 510~500년 경
'발'뿐만이 아니다. 전사의 다리 옆에 놓인 방패가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옆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미술가들이 더 이상 고대 미술의 평면적인 묘사와 답습에 머무르지 않고, 대상의 각도와 시각적 사실성을 의식해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림 속의 부모가 전사인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고대 이집트의 아크나톤(아멘호테프 4세) 시대에 나타났던 가족 간의 친밀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2-3장, '딸들을 안고 있는 아멘호테프 4세와 네페르티티' 참조) 이집트 미술에서 아크나톤의 시대는 신들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묘사한 독특한 시기로, 왕실의 가족애와 감정적 교류를 표현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아르카익 시기 후반의 그리스 미술에서 이와 유사한 인간관계와 감정의 표현이 다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미술은 이제 고대 미술의 오랜 규칙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