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하늘 생일
올해 초 연도를 세다가 깜짝 놀랐다. 아들이 하늘로 떠난 게 2020년 여름이니 올해로 4년이 된 것이다. 생때같은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 남은 세월 어떤 심정으로 살아갈지 참으로 막막했는데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4년이나 흘러버렸다. 지난 4년이 평탄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죽을만치 힘들었다고 말하기엔 죽은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날들이었다. 아들이 떠난 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갔고, 나는 그 속에서 잠시 잠깐 멈춰 섰고 그렇게 가슴 한편이 빈 듯, 늘 하나가 모자란 듯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직장에서 열여덟 살 학생을 만났다. 내 아들보다 한 살 많은 그를 보는데 어딘가 마음이 울컥했다.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을 아들이 잘 그려지지 않았었는데 그를 보니 대략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다 자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겸연쩍은 표정을 잘 짓고 행동도 어딘가 조금은 어리숙한…... 아직 덜 자란 어른. 조금은 기죽은 듯한 그의 눈빛을 보다가 아들이 쑥스럽거나 어색할 때 짓던 표정이 떠올랐다.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틀 전 친구들과 아들의 봉안당에 갔을 때도, 오늘 아침 아들의 마지막 자전거 라이딩 사진을 봤을 때도 잘 참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나요? 시간이 정말 약인가요? 자식 잃은 부모들이 내게 물었다. 자식을 먼저 잃어본 사람으로서 그럴듯한 이야기, 희망적인 이야기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없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며 시간이 조금씩 아픔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이제는 그 슬픔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가고 아들이 남겨준 사랑과 추억을 위안 삼아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견뎌낸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세상의 모든 시계가 멈춘 듯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이 내 가슴속에 스며든 것 같은 순간 말이다. 아들을 잃은 지 벌써 4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이 주는 고통만큼은 아직도 견뎌내는 것이 버겁다. 그리움은 여전히 깊고,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날카롭다. 아들과 함께 웃고, 먹고,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지금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데 아들의 웃음소리, 향기, 손길을 아직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는 이제 오롯이 나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아들이 없는 삶은 마치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지만 결코 도착할 수 없는 여정과 같다. 그리움이라는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나는 쉼 없이 걷고 있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아들이 남긴 사랑의 무게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세월이 흘러주고 '아! 4년이나 버텨냈구나!' 하며 놀라는 날이 찾아와 준다.
아들의 13년 삶은 비통할 정도로 짧았지만 아들이 세상에 있었을 때 남긴 것들을 생각하며 나도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들의 삶이 그랬듯이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아들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빛낼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면 또 아들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그런 삶과 비슷해질지 아직은 너무 막연하게만 느껴지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사랑이기만 했던 내 아들을 기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한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가 어딘가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응시할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아들에게 말할 것이다. 엄마는 슬픔에 빠져 살지만은 않겠다고…… 네가 보여준 사랑과 용기,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네가 세상에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빛을 내뿜으며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아들이 내게 남긴 사랑이 나의 삶을 다시금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아들에게로 가는 이 십자가 여정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늘로 유학 간 아들의 네 번째 하늘 생일, 나는 눈물로 기도한다. 내가 이렇게 너에게로 가고 있고 세월은 내가 조바심 내지 않아도 고맙게 흘러가고 있으니 우리는 언젠가 사랑으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