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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an 08. 2021

코로나로 1년을 빼앗긴 우리에게 주는 새해 선물

나만 즐겁고 나만 좋으면 되는 행복을 찾아서

함께 등산을 하다 동생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코로나로 빼앗긴 지난 1년이 너무 아쉬워... 이참에 한국 나이를 만 나이로 다 바꿔주면 안 돼? 뭔가 보상받는 느낌도 들고, 큰 위로가 될 거 같아. 별 거 아닌 일이지만 말이야."

기가 막힌 아이디어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와우 좋은 생각인데? 그럼 나는 마흔두 살이 아니라 마흔 살이 될 수 있어. 물론 곧 4월이면 마흔한 살이 되겠지만 말이야. 크크크..."


정말 별거 아닌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왕 우리의 상황이 이렇게 돼버린 거, 뭐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 어떤 선물보다 더 우리가 좋아하는 그것, 젊어진다는 것, 나이 한 살 어려지는 것. 그냥 기분 좋아지는 일이다.


사실 한국 나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나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아직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한 살이라는 나이가 주어진다. 3개월 된 아이도 6개월 된 아이도 같은 해에 태어났으면 모두 한 살이다. 'three month old', 'six month old'처럼 이야기하는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숫자 개념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의 나이를 중요시 생각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친구를 사귀든 일을 하든 운동을 함께하든 나이 한 두 살 차이가 관계에 있어 크게 중요치 않다.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만 봐도 정체불명의 한국식 나이를 쓰지 않고 만 나이를 쓴다. 특히나 일본의 경우 나이를 묻는 것은 상대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일 중의 하나이며 조금 친해진 후에나 가능하다. 우리나라만 유독 처음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나이를 묻고 따져 언니 동생, 형 동생을 하고 그것이 서열처럼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실랑이가 생길 때 갑론을박을 이어가다 모든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끝판왕, "너 몇 살이야!"가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1980년 4월 생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 나이 앞에 '빠른'이 붙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년 출생 연도의 1월부터 3월 생까지는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빠른'이 붙는 생들은 자신의 나이를 말할 때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여야 했다. "저는 80년 생이지만 1월 생이라 학교를 빨리 갔어요. 그래서 친구들은 79년 생이고요. (그러니까 저는 79년 생들과 동급이에요. 절 그보다 어리게 보지 마세요)." 같은 말들이다.


그런데 나는 4월 생인데도 어쩌다가 학교를 빨리 갔다. 내가 나이를 설명하려면 일반적인 '빠른' 생들 보다 몇몇 설명을 더 붙여야 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도 나이로 꿀리는 게 싫어 항상 '빠른'보다 '더 빠른' 내 나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러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던 해, 나는 스물아홉 해를 한번 더 살기로 결심했다. 79년 생과 함께 열을 맞추는 '더 빠른' 80년 생이 아니라 그냥 80년생으로 살아가기로 했고, 친구들에게는 나는 너희보다 한 살 더 젊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이후에는 79년생들에게 형 혹은 누나라 부르는 경우도 생겨났고, 80년 생들과 친구를 먹는 일도 많아졌다. 생각을 바꾸기만 했을 뿐인데 원래 내 나이를 되찾고 한 살 어려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좋아했고, 뭔가 하나의 선물을 받은 거 같았다.


누가 안 해주면 그냥 나 혼자 해봐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그 질문, "나진 씨 올해로 몇이나 됐죠?"라고 누가 물으면 그냥 내 만 나이를 대답하면 된다. 그럼 그냥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나는 이미 틀렸지만 이제 막 40대가 된 사람은 30대로 돌아가 한 해를 더 느낄 수 있고, 30대가 된 사람은 20대를 한번 더 불사를 수 있다.


작년 초 한국 나이를 없애고 만 나이를 적용하자는 것이 잠깐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올해도 비슷한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하지만 늘 그랬듯 조금 이야기가 나오다 역시나 사라졌다. 실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거니와 법률적으로 나이가 적용될 때는 이미 만 나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나이를 없앤다 한들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져 위로를 받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내 나이를 다시 계산해 얻는 잠깐의 유괘함과 즐거움, 그런 것 하나가 간절한 시기다. 그만큼 어디에서도 쉽게 재미를 얻을 수도 없고,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는 위안이 되는 일들을 찾기 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올해는 이런 일들을 좀 더 찾아보려 한다. 별 거 아니지만 나 혼자 한번 해보고 나 혼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일들. 그동안 소확행이 대세였다면 나만 즐겁고 좋으면 되는 행복 거리들, '나즐행' 혹은 '나만행'을 확실히 챙겨야겠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더 많은 돈을 위해 기를 쓰고 살고, 이미 높은 사회적 명성을 손에 쥐고 있어도 더 높은 곳만을 보며 아등바등 사는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021년의 '나즐행'은 어디에 있을까. 꾸준히 한 번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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