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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an 22. 2021

두 종족의 한집 살이

대범족과 예민족의 동거 기록을 시작하며...


심플하고 명료하며, 대범하고 시원시원한 육식녀 계열의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늘 한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예민하고 소심하며, 섬세하고 부드러운 초식남 계열의 남편입니다. 둘이 만들어내는 일상은 연애 때의 그것과 다르게, 결혼 전 꿈꿨던 장밋빛의 환상과는 달리 불협화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어긋나는 소리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진작에 벌써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겠지요. 불협화음 안에서도 환상적인 하모니를 찾아내 세상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냅니다.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최고의 조화를 보여주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생 최악의 순간, 인생 최고의 순간을 함께 만들어 나갑니다.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흔히 회자되는 치약 짜는 방법, 각종 집기류의 위치 같은 아주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일어나고 자는 시간 따위의 생활 습관, 집안의 대소사를 대하는 생각, 일을 대하는 접근 방식 등이 모두 판이하게 다른, 생각과 논리의 구조가 전혀 다른 종족입니다.


우리 부부만 유난히 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구 상에 사는 모든 부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합니다. 다르지 않다면 배울 수 없고 다르지 않다면 발전할 수도 없을 겁니다. 완벽히 똑같은 나의 분신과 살아간다면 혼자 가는 것과 다름이 없을 테니까요. 아무리 좋은 걸 해도 혼자 하면 그 감동이 줄어듭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나눌 사람이 있다면 아픔이 줄어드는 건 변하지 않는 이치임에 분명하지요.


최근 비혼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굳이 불편함을 감내하고 무거운 책임을 떠안으며 가정을 꾸려야 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지요. 여자와 남자, 남과 여의 성별 간 대립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습니다. 설마 '혐오'라는 단어를 서로에게 갖다 붙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비인격적이고 흉악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따라다니던 단어를 함께 살아가는 이성에게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혼자 만들어내는 삶보다 누군가 함께 만들어내는 삶이 조금 더 다채롭고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몰랐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상대로 인해 나 역시 성장합니다. 서로를 방해물로 인식하기만 하면 그 부작용은 끝이 없지만, 내 삶을 일깨워주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전혀 다른 두 종족이 만나 한집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단순히 여자, 남자라는 이성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주체적인 삶을 이어가는 서로 다른 종족이 만나 한집에서 만들어 내는 소리는 어떤 울림을 가져올까요.


제가 말하는 종족은 단순히 여자와 남자로 나뉘는 두 종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별이 전혀 관여되지 않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종족입니다. 전 세계 인구가 77억이라 한다면 지구라는 별에는 77억 종족이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함께라는 단어 밑에 있는 나는 어떤 종족일까요?

또 내 옆의 사람은 어떤 종족일까요?

그 종족과 건설해 나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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