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출장이란…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13년 동안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설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두 번이나 갈 줄은 몰랐다. 폭탄 테러의 위협을 느끼며 다녀온 레바논, 방송 장비를 모조리 빼앗긴 텔아비브 공항, 망한 관광지에서 올림픽을 꾸역꾸역 치러내던 러시아 소치 등 기억에 남는 곳이 참 많다.
하지만 2021년의 도쿄 출장만큼 기억에 남을까 싶다. 이제 막 도쿄 땅을 밟았을 뿐인데 그럴 거란 확신이 든다. 사실 회사 전담 여행사에서 출국 전 3시간이 아닌 2시간 30분 전에 만나자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출국 수속은 2시간 반이 아니라 1시간만 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사람이 없으니 걸리는 시간이 국내선 수준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공항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것.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항에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공항은 내가 알던 활기 넘치는 모습이 아닌, 죽은 자들의 도시 같았다. 면세점 셋 중 둘은 문이 닫혀있었고 그나마 열린 곳에 있는 점원들도 고요함에 기운이 빠진 듯 보였다. 라운지에는 힘없이 응대하는 직원과 남아도는 좌석만이 보였다.
면세점 직원으로 일하던 아는 누나가 생각났다. 해외 나간다 하면 꼭 파우치와 샘플 화장품을 챙겨주던 누나. 어디에 있을까. 강제 휴직이라도 해야 했을까.
공항버스 운전기사님, 사람들을 줄 세우고 짐 싣는 걸 도와주시던 직원분들은 다른 일자리를 얻으셨을까.
보통 기내에 네댓 명이 보이던 승무원들도 딱 세명이 있었다. 나머지 승무원들은 어떤 상황일까…
코로나 시대의 출장은 참 많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한다. 매달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월급쟁이임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다행스러움에 젖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이 일었다. 그동안 국제선 올 일이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 체감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본다.
도쿄에 도착하는 과정부터 남달랐다. 하지 않아도 되었던 출국 96시간 전, 72시간 전 두 번의 코로나 검사. 원래대로라면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두 번의 백신 접종. 4일 동안 보건소 3회, 공항 2회 방문.
도착 후에는 더 심했다. 여권과 건강카드, 백신증명서, 음성 증명서, 위치추적 앱, 건강관리 앱 등을 십 수 차례 냈다 받았다를 반복했다. 대략 대여섯 관문(?)을 통과해야 했고 코로나 침 검사로 음성 판정을 받은 후, 비행기 랜딩 후 약 3시간 반 만에 평소 하던 입국 수속대에 설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첫날이다. 앞으로 3일 연속 코로나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 7일 동안 5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는 셈이다. 14일간 대중교통은 이용 금지다. 숙소, 방송센터, 경기장을 제외한 장소는 그 어디도 갈 수 없다. 벌써부터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할 일도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열심히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 그들의 활약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오히려 단순해서 좋다.